간유리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그림자를 만드는데 그게 예뻐서 가만히 들여다봤다. - 길담서원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출입문은 간유리를 낀 미닫이 홑문이고 방문은 합판에 작은 간유리를 낀 여닫이문이 나온다. 위에는 팔각형 무늬를 넣은 불발기창이다. 창문도 간유리를 끼운 겹문이다. 간유리(frosted glass)는 젖빛유리라고도 하는 데, 채광 기능은 하지만 유리 너머를 들여다보거나 내다볼 수 없는 유리이다. 이 집에는 간유리도 구름무늬, 헤링본, 줄무늬 등등 다양하다.
코끝은 맵고 하늘은 파랬다. 방문들을 없애고 창문과 현관문을 떼어내서 물청소를 했다. 창틀과 문틀의 먼지는 끌과 칼로 긁어내고 사포로 샌딩하고 오일을 흠뻑 발랐다. 현관문 4짝을 먼저 작업했다. 문틀을 샌딩할 때마다 그 위로 하얗고 오래된 먼지가 피어올랐다. 거친 120방 사포로 갈아내고 400방 사포로 마무리하고 집진기로 빨아들이고 에어콤프레서로 털어내고 걸레로 닦은 후 고운 천으로 아마씨 오일을 문질렀다. 세수한 듯 깨끗해진 문이 되었다. 나무로 된 문은 시스템 창호처럼 매끄럽고 균일하지 않아서 틈과 굴곡이 많았는데 이런 부분은 손으로 사포질을 했다. 손가락과 손목이 엄청나게 아팠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담장에 기대어 놓고 오일을 바르던 중, 간유리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그림자를 만드는데 그게 예뻐서 가만히 들여다봤다. 이거구나! 시스템 창호에는 없는 거, 겨울에 덜컹대면서 문과 문틀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서 추웠을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이 덜컹거리는 문에서 들어오는 찬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정서가 거기에 묻어 있는 것 같았다. 4시쯤 되니 해가 넘어가서 오일이 뭉치기 시작했다. 5~6시간을 물질, 사포질을 하고 오일을 바르고 나니 힘이 빠졌고 신발도 젖었고 손목까지 얼얼했다. 퇴근해서 파라핀 배스에 손과 발을 담갔다. - 112p. ~ 113p.
작은 책방 집수리 : 길담서원 이전일지. / 이재성. 이정윤 / 이유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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