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비밀 ] 이웃과 타인에 대한 배려, 미소를 짓게 만드는 따뜻한 소설.
[우리집 비밀 / 오쿠다 히데오 / 김난주 / 재인]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해서 읽을 때가 있다. 최근에 시도한 작가는 바로 ‘오쿠다 히데오’다. 작가에 대한 세간의 평은 ‘우울할 때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어라’로 요약된다. 유쾌함과 재미를 보장한다는 뜻이다.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작품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생각이 든다. 코믹, 사회비평, 범죄물, 로맨스, 가족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기본 재미는 물론이고 삶에 대한 자세와 철학이 담겨 있다. 특히 가족과 이웃에 대한 휴먼스토리는 웃음과 눈물과 감동을 준다. 독자를 잡아끄는 매력이 풍성한 작가다.
[우리집 비밀]은 [오 해피 데이], [우리 집 문제]에 이은 오쿠다 히데오 가족 소설 시리즈 3탄이다. 일본이건 한국이건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한데, 작가는 가족간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이야기를 통해 가족과 이웃, 사랑에 대해서 돌아보게 한다. 같이 살지만 서로 소홀한 가족, 때론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이 있어서 인생은 살 만하다. 행복의 원천은 가족에 있는 것이다. 작품이 쉽게 읽히는 것은 부담 없고 따뜻한 유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각박하고 삶이 팍팍할수록 여유로운 유머가 필요하다.
이 책에는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문예지에 연재되었던 단편 중 선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중 5편이 2019년 NHK TV 5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충치와 피아니스트 / 마사오의 가을 / 안나의 12월 / 편지에 실어 / 임산부와 옆집 부부 / 아내와 선거
개인적으로 ‘마사오의 가을’과 ‘편지에 실어’를 손꼽는다. 그렇지, 그래야지, 하는 맞장구가 절로 나온다. 나라면 저렇게 못했을 텐데, 저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두 작품에서 중년의 지혜, 삶의 철학이 돋보여 좋았다. 그리고 떠오른 단어는 ‘배려’였다. 중년의 우아함은 배려에서 나오는데, 중년이 아니더라도 인간관계를 알차게 만들고 원활하게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다.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되뇌었던 단어다.
마사오의 가을 :
승진 경쟁에서 입사 동기에게 밀려나 은퇴하게 된 쉰 세 살의 샐러리맨 마사오. 그간의 실적이 월등한 자신을 제치고 사내 정치에만 능한 가와시마를 선택한 회사의 결정에 분한 감정이 든다. 공식 인사 발표에 앞서 회사의 ‘배려’로 떠밀리다시피 여행을 떠난 마사오는 여행지에서 가와시마의 부친상 소식을 접한다. 부친상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아내와 함께 상갓집을 찾는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있고 배경이 있고 가족이 있단 말이지. 이제 쉰이 넘었으니까 좀 내려놓고 삽시다.”
“배를 바꿔 탄다고 생각해.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느린 배로 말이야.”
- ‘마사오의 가을’ 95p.
편지에 실어 :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은 사회 초년생 도오루. 아내를 잃은 도오루의 아버지는 매사에 의욕을 잃고 눈물로 하루하루를 지새운다. 도오루는 회사의 배려로 당분간 힘든 일에서 빠지기로 하는데, 그의 직속 상사는 그런 도오루를 못마땅해 한다. “가족의 불행이 일을 소홀히 하는 데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그에 반해 1년 전 상처한 경험이 있는 이시다 부장은 도오루의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마주칠 때마다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 급기야 이시다 부장은 장문의 편지를 써서 도오루 편에 아버지에게 전달하는데, 편지를 받아본 아버지는 그날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도오루의 아버지도 이시다 부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전한다. 그 편지를 읽은 이시다 부장은 눈물을 흘린다.
“이거, 아버지가 드리는 감사의 편지입니다. 아버지가 부장님 편지에 감격하신 것 같아요.”
“아 그래?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고.”
도오루는 자기자리로 돌아온 후 힐끔힐끔 부장 쪽을 바라봤다. 편지를 읽던 부장은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고 편지를 손에 든 채 일어서더니 왼손으로 코를 누르며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울잖아. 도오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내를 떠나보낸 아버지와 1년 전에 상처를 한 부장은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의지했던 것이다.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가정 내에서, 직장에서, 이웃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 사람들 간에 배려가 결국 살만한 세상을 만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나이들수록 현명해져야 하는데,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현명함과 품위를 준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은 ‘한밤중에 행진’이었는데,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그런 분위기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런 잔잔한 감동 있는 작품도 좋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거창한 물음에 대해서 작지만 간단한 대답을 내준다. 그리고 ‘소중한 삶’이란 위안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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