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 장석주 - 그 맨 끝자리에 나는 적는다. 너의 이름을... ]
이책은 예전에 [추억의 속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2012년에 [고독의 권유]로 재출간되었다.
이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골에 지은 집 / 느리게 산다는 것 / 추억의 속도
이 글은 '추억의 속도' 편에 있는 글 '너에게' 일부분이다.
그 맨 끝자리에 나는 적는다. 너의 이름을... 이 대목이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이다
너에게
햇빛, 햇빛, 햇빛... 흰 쌀알처럼 쏟아져 내리는 햇빛들. 참 좋은 햇빛이다. 월요일 오전의 햇빛이 고즈넉이 내리는 이 시각, 나는 많이 망설이다가 네게 전화를 한다.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도 내 마음 속으로 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뒤엉키며 흘러간다. 설렘과 혼란, 그리고 약간의 불안... 막 잠에서 깬 듯한 네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런 것들은 장마비를 품은 검은 구름이 걷히듯 말끔하게 걷힌다. 전화를 끊고 난 뒤 정오로 넘어가는 시간의 적막 속에서 네게 이 편지를 쓴다. 널 만난 건 크나큰 행운이다. 어쩌면 넌 조금은 너에게 쏠리는 내 막무가내의 감정이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러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앞에 나타난 이'라는 낯설고 생생한 현존 앞에서 어린 소년처럼 마냥 설레는 내 마음의 순도다. 널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내 마음은 한사코 네게로 기울었다. 정말 너무나 오랫동안 내 삶은 와디 같았지. 와디... 우기 때만 생겨나는 사막의 건천. 물이 범람하면 강이 되지만, 보통 때는 물 없이 강의 흔적만 갖고 있는 모래강... 놀랍게도 널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내 존재를 꽃 피워야 할 이유를 갖게 되었음을, 가슴이 충일하는 어떤 예감들로 설레었음을 고백한다. 내 존재를 이루는 모든 것들, 내 몸의 세포들, 유전자,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 흠 많은 혼, 경험과 의지, 동경, 욕망, 그리고 나의 성급함, 어리석음, 분노, 치욕, 건방짐, 질투심... 그 모든 것들이 '너'라는 한 사람의 존재 때문에 '의미'를 갖는 이 갑작스런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랑은 예고 없는 신열처럼, 신내림처럼 오는 것.
숲, 오솔길, 바다, 협재 바닷가, 온천, 4월의 비, 새로 돋는 잎, 초록 싹들, 아이스 티, 비 오는 날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나무의자, 밀란쿤데라, 프로방스 지방, 장 그르니에, 차가운 맥주, 담소, 마음이 우울할 때 듣는 바흐의 모든 음악,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연주, 연극,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들, 니체, 생선 초밥, 마종기의 연가들, 이상, 기형도, 화집들,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회색빛, 들판에 서 있는 나무들, 오후 4시의 창에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하오의 빛.... 이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 속에 또 하나를 추가한다. 그 맨 끝자리에 나는 적는다. 너의 이름을...
고독의 권유 / 장석주 / 다산책방
부제 : 시골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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