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의 빈자리를 사람이 꽉 채우고 있었다. - 일상이 슬로우 / 신은혜 ]
언제부턴가 와이파이가 조금만 느려도 엄청 답답하고 안 터지면 불안하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처음 출시된 게 2009년이니까 스마트폰 없이 산 세월이 더 길다. 그땐 어떻게 살았을까 싶지만 아주 잘 살았다. 책을 보면서 친구를 기다리고, 좋아하는 가수의 CD가 발매되는 날짜에 맞춰 레코드 가게에 가고, 만화책 신간이 나오면 서로 돌려보고,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기면 친구에게 전화하고, 잠자기 전에 라디오를 듣고, 다양한 것들이 시간의 공백을 채워주었다.
쿠바로 떠나기 전, 가장 걱정됐던 게 와이파이였다. 스페인어를 하나도 못 하는 데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고, 숙소는 어떻게 찾고, 호스트에게 어떻게 연락하고, 이동은 어떻게 할지, 시시때때로 검색할 게 천지일 텐데 어떡하나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와이파이 없이도 잘만 돌아갔다. ‘여기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어디에요?’라는 말을 스페인어로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준 건 구글 번역기가 아니라 공원에서 만난 쿠바 아저씨였다. 현지인만 아는 맛집으로 안내해준 건 유튜브가 아니라 동네 주민이었다. 쿠바가 얼마나 안전하냐면 인구 절반이 경찰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 건 시가를 파는 상인이었다. 다음 도시로 가려면 택시와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는데 택시는 얼마고 버스는 얼마라고 알려준 건 까사의 호스트,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방법은 호스트의 여동생이 알려주었다. 와이파이의 빈자리를 사람이 꽉 채우고 있었다. - 159p. ~ 160p.
일상이 슬로우 / 신은혜 / 책읽는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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