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과 탐정소설 - 시계도둑과 악인들
어느덧 하스노는 서가를 열고 소설을 몇 권 떠내 판권장을 확인하고 있었다.
“왜 그러나?”
“이 책들은 야요이 씨의 장서라고 하셨죠? 소설책이 많은데, 하루미 씨는 읽으셨습니까?”
“안 읽어봤네만.”
“연애소설이 많은 듯한데, 싫어하십니까?”
하루미 사장님은 흠, 하고 콧김을 내쉰 후 다시 장지문 옆 의자에 앉았다.
“애당초 연애를 소설의 소재로 삼는 게 잘못이야. 연애는 상대를 남과 구별하는 행위지. 자신만이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착각을 팽창시키는 과정이 연애일세. 즉, 연애는 남의 이해를 거부하는 법이야.”
“그렇군요.”
“그런데 소설은 남이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하잖는가. 따라서 연애소설에는 진정한 연애가 담겨 있지 않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연애 주변의 사실과 현상만 담겼을 뿐이지. 그 차이를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인생의 큰 문제를 논하는 것처럼 구니까 시시할 수밖에. 소설 중에서도 최하급이야.”
일리 있습니다, 하고 하스노는 적당히 대답한 후 다른 서가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탐정소설은 어떻습니까? 연애소설보다는 급이 높습니까?”
그쪽 서가에는 탐정물이 많이 꽂혀 있다고 했다. 나로서는 제목조차 읽지 못할 작품이 많았다.
“탐정소설은 애당초 소설이 아니야. 마술과 흡사하니 현실과 동떨어졌지만 비현실로 일관하지는 않되, 어디까지나 편벽해서 작가의 머릿속이 얼마나 뒤틀렸는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전부인 글일세. 정신과 의사에게 제출해야 할 글이 실수로 책방에 진열됐을 뿐이겠지. 그런 것치고는 묘하게 잘 팔리는 모양이네만.”
“좋아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럼 됐습니다.”
하스노는 책을 서가에 꽂은 후 하루미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담배통을 꺼냈다. 이걸 피우겠나, 하고 하루미 사장님이 품속의 엽궐련을 권했지만, 하스노가 거절했으므로 불을 붙여 자기 입에 물었다.
- 312p. ~ 313p. ‘하루미 씨의 외국 편지’ 중
시계도둑과 악인들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블루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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