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게 당연했던 꼴통 야구부가 운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연전연승을 거두기 시작한다. 하늘이 돕고 땅이 돕고 상대 팀 선수들이 마치 자기 팀이 된 듯 활약(?)해준 덕분에 야구부 창설 이래 수십 년 동안 못했던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한다. 하지만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건이 터지고 마는데...)
한 번만 더 이기면 우리가 고시엔에 간다? - 열구 : 그때 우릴 미치게 했던 야구
언젠가 슈코 야구부의 역사가 기록될 날이 온다면 우리들, 그러니까 1981년 졸업반의 기록을 담당하는 사람은 필시 꽤 애를 먹을 것이다. 지역 예선 준우승이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남긴 것은 칭찬 일색으로 기록하겠지만 다음 줄에는 ‘팀원의 불상사로 인해 결승전 출전을 포기하고, 고교야구연맹으로부터 6개월간 대외시합금지처분이라는 오점을 남겼다.’고 써야 할 것이다.
오사무가 일으킨 사건은 우리들에게 바로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학교로 연락이 온 것은 밤 7시 전이었지만, 야구부원이 보호자 동반으로 학교에 호출된 것은 밤 9시가 지나서였다.
주장인 다나카와 부주장인 가메야마가 교장실로 불려가고, 학부모는 회의실에, 우리는 야구부실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더 베스트 텐]을 매주 빼놓지 않고 보던 진노가 뭐라고 투덜거렸으니까, 그때가 목요일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다. OB가 결승전 진출을 축하하며 고깃집에라도 데리고 가지 않을까 하고 말한 것이 3루수 유타카였던가, 1루수 시라이시였던가. 오사무가 야구부실에 없는 걸 처음 알아챈 것은 나다. 그때는 시간을 잘 안 지키는 녀석이라고 모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나카와 가메야마는 좀처럼 야구부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입에 오른 화제는 당연히 내일 있을 결승전에 관한 것이었다. 1회전 통과가 목표였던 우리가 앞으로 1승만 더 하면 고시엔 대회에 진출할 수 있다. 아주 먼 곳에 잇던 꿈이 손만 뻗으면 닿을 곳까지 왔다. 결승 상대는 세토 학원의 대항마로 불리는 오우치 상고였다. 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이길 확률이 희박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운이란 것이 있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따라붙는 운이, 우리의 최대이자 유일한 무기였다.
“할 수 있어, 여기까지 왔으니 이겨보자고.”
누군가 말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후회 없는 시합을 맘껏 해봐야지.”
이어지는 진노의 말에 토를 다는 팀원도 없었다. 이기면 고시엔에 갈 수 있다. 꿈과 동경이 그날 밤 비로소 목표가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야구부실 밖으로 나와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더웠지만 별이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달빛을 받은 마운드의 투수판이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고시엔, 고.시.엔. 배트를 휘두르면서 목구멍 속으로 중얼거리자 등이 오싹오싹했다. 거짓말 같다고 생각했다. 한 번만 더 이기면 고시엔? 우리가 고시엔에 간다? 순간 결승에서 졌을 때를 상상했다. 져도 본전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이길 리가 없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하고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편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 두렵다. 어차피 질 거다. 어떻게든 접전으로 끌고 가서 에이스로서 정면승부를 펼치고, 훗날 “아까웠어, 정말.” 하고 모두가 그날을 그리워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약한 생각이다. 이런 근성으로는 이길 수 있는 시합도 이기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다시 꾸짖었다. 고시엔이다, 고시엔. 동경해 마지않던 고시엔에 1승만 더 하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긴다. 무조건 이긴다. 마지막 타자를 잡고 팀원들과 마운드에서 부둥켜안는 그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혹독한 연습을 참고 견뎌오지 않았던가.
티셔츠의 등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쯤 다나카와 가메야마가 마침내 돌아왔다. 다나카와 가메야마와 감독과 부장과 교장. 다나카와 가메야마는 고개를 숙이고, 감독과 부장에게 양 옆에서 부축을 받듯 걷고 있었다. 교장은 우리가 배팅 연습을 멈추고 인사하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면했다.
감독은 우리에게 야구부실로 들어오라고 명령했다. 다나카는 얼굴을 들지 않았다. 가매야마도 고개를 숙인 채 두꺼운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난폭하게 문질렀다.
사건에 대해선 부장이 얘기했다. 어떤 설명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상해 사건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부장의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되어버렸다.
야구부실 벽에는 ‘열구’라고 쓴 색종이가 액자에 표구되어 걸려 있다. 자와 옹이 매년, 새 팀이 시작될 때마다 써주는 색종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고시엔에 나가줘.”가 입버릇이었던 자와 옹은 낮에 있었던 시합에서 우리가 끝내기 득점으로 결승 진출을 확정하자 스탠드 맨 앞줄에서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다가 하마터면 그라운드로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들으면 자와 옹이 깜짝 놀라겠네, 하고 생각했다. 충격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른 애들도 모두 자기보다도 먼저 자와 옹을 떠올렸던 것 같다. 일종의 현실도피였는지도 모른다.
부장의 얘기는 어느새 끝났다. 대신 교장이 우리들을 한 명 한 명 둘러보면서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너희들이 가장 억울하겠지만, 또 학교로서도 정말 유감이지만, 내일 시합은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기억이라는 것은 짓궂은 데가 있다. 교장의 그 말만 또렷하게,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 57p. ~ 60p.
열구(熱球) : 그때 우릴 미치게 했던 야구 / 시게마츠 기요시, Kiyoshi Shigematsu / 김대환 / 잇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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