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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공간에 머물기 - 날마다, 도서관

by oridosa 2025.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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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공간에 머물기 - 날마다, 도서관


도서관은 순위가 중요한 세상에 저항하는 곳이다. 소비하는 공간으로부터의 도피처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라고 유혹하는 작은 스크린과 소비하게 만드는 매끈한 사진들, 여기저기 광고된 책, 요즘 꼭 보아야 하는 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이든, 대출이 전혀 되지 않는 책이든, 막 출간되고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이든 동일한 책장에 꽂혀 있다. 최근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책이 일련의 청구 기호에 따라 가장 아래 칸에 꽂혀 있을 때 역시 모든 책을 공평하게 대하는 도서관답다고 느낀다. 특히 잘 안 팔린 내 책이 눈높이에, 딱 알맞은 칸에 꽂혀 있는 모습을 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인터넷 서점 내 순위로 나열된 책들과 편리한 추천 목록을 그대로 따르는 수동적 독서가에서 벗어나 주체적 독서가로서 도서관의 책들을 살펴본다. 어느새 나는 도서관이 품고 있는 저항의 에너지를 받는다. 대형출판사 책, 유명 작가들의 책, 광고 배너로 보았던 책 옆의 낯선 책들도 손쉽게 꺼내 훑어본다. 오히려 한 번도 보지 않아 눈에 띈 책의 만듦새, 저자와 출판사를 보다 부제에 끌려 대출한다. 이 책이 어느 한 사람의 눈에 띄어 도서관까지 온 과정을 생각해본다. 모든 책은 두 사람 이상 누군가에게 와닿았을 것이다. 나 같은 무명 저자의 책도 어떤 한 사람의 선택으로 도서관이 구입해주고, 비치해주고, 추천 도서로 올라가기도 한다.

온갖 것을 숫자로 판단하는 세상으로부터 도서관은 저항하려고 애쓴다. 몇몇 작은 서점만 해도 많이 팔린 책 순위를 올린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순위대로 책 구매를 한다. 한번 매겨진 순위는 잘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유명해서 유명해진 유명한 책을 선택한다. 잘 팔리지 않는 책들은 대형 서점에서 몇 달 만에 퇴출되지만 도서관은 단 한 번도 대출되지 않은 책도 몇 년 동안 품고 있다. 단 한 명의 독자가 올 때까지 기다려준다. 심지어 몇 년 동안 한 번도 대출되지 않아 폐기 처분 위기에 놓여 있는 책들만 대출해서 좋은 책을 살리려는 사서들도 있다. 내가 종종 다니는 모 작은 도서관 관장도 도서관 활동가들과 함께 한 번도 대출되지 않은 좋은 책들을 며칠에 걸려 자신들의 대출 카드로 대출했다. 한 번도 대출되지 않은 책만 찾아서 함께 읽는 ‘비대출 도서 독서가 연합’도 있으면 어떨까. 사서들이 골라준 비대출 도서 목록에서 선정해 독서 모임을 꾸려도 재미나겠다.

책조차 순위를 매기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쉽게 잊히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한 도서관의 조용한 저항력을 응원하고 싶다. 오늘 나도 반항하는 독서가가 되어 도서관의 저항에 동참한다. 어려울 것이 없다. 오늘도 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도서관은 누구인지 확인하는 세상으로부터 저항하는 곳이다. 같은 동네에 살아도 아파트에 따라 계급이 나뉘듯 그들만의 공간에 함부로 입장했다가는 침범자가 된다. 어디에 사는지 확인당하는 시대다. 다른 아파트 놀이터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 사회에 기막히지 않으려 도서관에 간다. 적어도 도서관은 어디 사느냐고 묻는 이가 없고 누구든 환영하는 곳이지 않은가. 유토피아적인 절대적 환대의 공간에 가장 가까운 곳은 도서관이 아닐까. 외국 도서관들 중에는 노숙자들이 도서관에 들어오면 샤워실로 안내해주는 사회복지사까지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보았다.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고, 존재를 증명해야 하고, 그에 따른 노력에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날. 가만히 멈추고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누군가는 명상하고, 여행을 떠나고, 피아노를 치는데, 나는 도서관에 간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는 않지만 거기에 누군가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 그거 거기 같이 있음으로써 조용히 위안을 받는다. - 157p. ~ 160p.

날마다, 도서관 / 강원임 / 싱긋

날마다, 도서관 / 강원임
날마다, 도서관 / 강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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