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곰이 달려오면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엎드리게. - 가라앉는 프랜시스
얇고 연하고 조그마한 초록이 가지 끝마다 얼굴을 내밀고 있다. 게이코는 가즈히코네 집으로 가고 있었다. 강을 건너서 숲길을 달리는 것이 도대체 몇 번째일까. 가즈히코에게 처음 우편물을 가져다준 것도 이런 계절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이제 아득히 먼 옛날같이 느껴진다.
숲길 왼쪽에 집이 보인다. 그때 게이코는 그간 보지 못했던 한 대의 경자동차가 가즈히코네 집 앞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걸 마주했다. 후진으로 전환하면서 방향을 바꾸려고 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게 생각되는 거북살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게이코는 차 속도를 떨어뜨린다.
경자동차는 게이코의 차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일단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운전자가 유리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이쪽을 돌아봤다고 생각했을 때, 처음 알아차렸다. 곰이었다. 차로 보였던 것은 홋카이도 큰곰이었다.
갈색으로도 회색으로도 보이는 털의 큰곰은 게이코의 차를 물끄러미 보고 양어깨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머리를 조금 흔들더니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 언덕 위에 있는 헤드탱크 건물 쪽으로 향한다.
건물 안에 가즈히코가 있으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에 게이코는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자신의 입을 눌렀다. 잘못 자극해서 이쪽으로 오면 어떻게 하려고. 게이코에게 곰을 주의하라고 한 것은 국장뿐이었다.
“앞쪽에 곰이 보이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 뒤돌아가게. 속달이 있든 등기우편이 있든 상관없어. 만일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면 숨을 죽이고 천천히 뒷걸음하는 거야. 절대로 뛰어서는 안돼. 곰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뒤로 뒷걸음질 쳐야 해. 절대로 등은 보이지 말고. 만일 곰이 달려오면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엎드리게. 머리와 얼굴은 손과 팔로 감싸듯이 하고, 그리고 가능한 한 숨을 멈추는 거야.”
이 작은 차의 문이나 유리창은 큰곰이 한 번 치기만 해도 부서질 것이다. 뒷다리로 선 곰이 양팔로 차를 넘어뜨리려고 하면 한 방에 뒤집히는 게 아닐까. 큰곰은 이쪽에 관심이 없어진 듯 건물을 향해서 천천히 언덕을 올라간다. 입구 앞에서 멈추자 자꾸 머리를 들었다 숙였다 한다. 그리고 갑자기 뒷다리로 일어서더니 문을 두들기듯이 한다. 손톱이 무언가에 부딪혀서 긁히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난다. 기이코는 힘껏 클랙슨을 울렸다. 길고 강하게. 손을 뗀다. 곰이 움직임을 멈추고 게이코의 차를 보았다. 다시 한 번 길고 강하게 클랙슨에 온몸의 체중을 싣듯이 양손으로 눌렀다.
안채 현관문이 열린다. 가즈히코다. 게이코는 클랙슨을 짧게 계속해서 누르면서 언덕 위의 건물을 오른손으로 가리켰다.
곰은 클랙슨 소리에 염증이 났는지 건물 건드리기를 그만두고 등의 털을 출렁거리면서 왼쪽 산기슭을 오르기 시작한다. 놀랄 만큼 민첩하게 나무 사이를 누비듯이 경사면을 비스듬히 올라간다. 현관으로 들어간 가즈히코가 얼마 있다가 나오자 라이플 같은 것으로 곰의 뒷모습 훨씬 위쪽을 겨냥한다.
위협사격이라는 것은 처음 보는 게이코도 알 수 있었다. 총성이 들렸다. 가즈히코가 라이플을 갖고 있고 게다가 사격도 할 줄은 몰랐다. 클랙슨보다 몇 배나 큰 소리가 두 번 더 울렸다. 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게이코는 갑자기 눈물이 흘러넘쳤다. 핸들을 쥔 채 고개를 파묻고 소리 내서 울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눈을 들자 가즈히코가 라이플을 들고 서 있었다. 게이코는 문을 열고 가즈히코한테 매달려서 다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가즈히코는 양팔로 게이코를 안더니 한 손으로 게이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울면서, 곰에 놀란 것이 아니라 가즈히코의 총에 놀라고, 라이플 소리의 충격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라는 걸 알았다. 그 바람에 못 본 척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억눌러온 것이 둑이 무너진 듯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가즈히코는 겁 많은 여자가 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게이코는 좀처럼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 162p. ~ 163p.
가라앉는 프랜시스 / 마쓰이에 마사시, 松家 仁之 / 김춘미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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