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결정체에는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 - 가라앉는 프랜시스
눈이 내린다. 올려다본 어슴푸레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은 하얗지 않고 회색으로 보인다. 자신이 내뱉는 숨소리만이 들린다.
기억 속에 있는 에다루의 눈보다 알맹이가 작게 느껴졌다. 작은 눈이 장갑 위에 떨어진다. 얼굴을 가까이 대면 바로 녹아서 없어진다. 게이코의 집에서 가까운 정년퇴직한 부부의 집 부엌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무음의 경치 속에서 하얀 눈 사이를 누볐다. 프로판가스가 점화하는 퐁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주변에는 사람의 모습이 없다. 기온은 영하 5도 정도 될까. 냉기 때문에 다리가 금세 마비된 것같이 느껴진다.
게이코의 모습을 알아챈 듯한 타이밍에 눈이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 있는 숲에 시선을 보내자 바람의 길을 타고, 휩쓸려 들어가고 내려붙는 눈의 흐름이 놀랄 만큼 빠르다. 하나하나의 결정이 내리는 모습은 온화한데, 먼 풍경으로 본 순간, 왜 이렇게 격렬한 것이 되는 것일까.
실온의 온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차가운 장갑 위에 눈이 작은 생물처럼 춤추면서 내려와서는 녹지 않고 그대로 머물기 시작했다. 게이코는 장갑을 얼굴에 갖다대고 떨어진 눈을 봤다. 육각형의 눈 결정이 그대로 분명하게 보인다. 마이크로 단위의 하얀 글라이더가 기하학적인 원진을 만들고 가만히 대기하고 있는 듯한 것. 가지가 갈라지지 않은 심플한 육각형인 것, 관람차처럼 바구니를 주위에 여섯 개 매단 것도 있다.
에다루에 있을 때도 이랬다. 추위가 혹독해지면 육각형 결정이 그 형태대로 내렸다. 이미 쌓인 눈 위에, 베란다의 난간과 개집 지붕 위에, 결정은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고 내려와서는 조용히 가만히 있는다. 세계는 그 얼마나 섬세하게 성립되어 있는가. 중학생이던 게이코가 그런 단어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결정체 하나하나를 보고 있을 때 분명히 그런 느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눈의 결정체에는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 구름 속에서 우연처럼 태어난 얼음 덩어리가 가지를 차례차례 뻗어가듯이 그 형태가 되는 것은 영하 10도에서 20도 정도의 수천 미터 상공이다. 태어나는 순간 약속된 낙하가 시작된다. 영하의 대기 속을 빙글빙글 돌고 뒤집어지고, 혹은 그대로 활공해서 안치나이 마을에 떨어진다. 이미 새하얀 안치나이 마을의 인가가 모여있는 중앙부에서 하얀 수증기가 미덥지 못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거기에서 약간 벗어나 가늘고 길게 찢어진 상처 같은 유베쓰가와가 보인다. 스며나온 림프액처럼 얼지 않는 강. 얕은 물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가면 이제 착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강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도 있고 강가의 나뭇가지에 쌓이는 것도 있다. 바람을 타고 좀 더 활공하다가 초등학생 모자 위에 떨어져서 녹아 없어지는 것도 있다. 눈 결정의 최후를 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누가 안내한 것도 아닌데 게이코의 장갑 위에 떨어진 눈은 우연찮게 이렇게 긴 시간 응시되지만, 대부분의 결정체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갑자기 시작된 되돌릴 수 없는 여행의 앞길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영구히 착지하지 않는 눈은 한 조각도 없다. 분명한 것은 그 사실 뿐이다.
몸속까지 차가워진다. 주위에는 이미 눈의 하얀색이 퍼져 있다. 서둘러서 무언인가를 숨기듯이 골고루,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또 소리 없이 눈은 쌓이고 있었다. - 123p. ~ 125p.
투명한 얼음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유베쓰가와 양 기슭이 반짝반짝 빛난다. 영하 10도 이하가 되는 날이 일상이 되어간다. 발전 오두막 안은 냉동고처럼 차서 갠 날은 바깥에 있는 것보다 추울 정도였다. 가즈히코는 집과 발전 오두막 사이의 눈을 부지런히 쓸어낸다. 큰 눈이 내린 날 이외에는 바람에 불려 모인 눈을 대나무 빗자루로 쓸어내면 길 확보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아침과 낮, 그리고 일몰 전에 적어도 한 번씩 발전 오두막에 가서 계기를 체크하고, 프랜시스 터빈 소리를 귀로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을 쓸면서 온다.
숲길 너머에 있는 헤드탱크 건물까지의 눈 쓸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즈히코의 상체에도 하체에도 쓸데없는 지방 따위가 전혀 없는 것은, 그렇게 몸을 써야 하는 작업을 매일 일상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게이코는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겨울뿐 아니라, 여름에는 부지 전체의 잡초를 깎아야 하고, 잔디도 일주일에 한 번은 깎아줘야 한다. 가을에는 낙엽을 쓸어모은다. 자연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집 주위를 유지, 보수하는 작업이 이것저것 필요하지만, 가즈히코는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한지 모른다.
새해가 되어 두 번째 일요일 아침은 영하 20도까지 기온이 내려갔다. (게이코의 집 북쪽 창에는 외기 온도계가 붙어 있다.) 하늘은 맑았다. 야트막한 태양 빛을 받아 반짝반짝 떠다니듯이 다이아몬드 더스트가 흐르고 있었다. 게이코는 차를 타고 그 미묘한 빛의 알갱이에 둘러싸여 가즈히고네 집까지 갔다. 가즤코의 집도, 발전 오두막도, 다이아몬드 더스트에 싸여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볼 표면이 당기는 것 같은 마른 냉기와, 작은 알맹이가 콧등에 부딪히는 것 같은 희미한 감촉이 있다. 눈보다 딱딱하고, 눈보다 무기질인 것 같아서 손바닥을 하늘로 내밀어도 떨어져 내리는 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 140p. ~ 141p.
가라앉는 프랜시스 / 마쓰이에 마사시, 松家 仁之 / 김춘미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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