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 우리 땅 우리 꽃, 야생화, 한국자생식물원 ]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 송기엽, 이유미 / 진선출판사]
강원도 평창에 가면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 있다. 자생식물이란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종(種)을 퍼트리고 번식할 수 있는 식물을 말한다. 이곳에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들이 계절마다 피어있다.
몇 해 전 봄에 이곳을 다녀왔는데, 한 자리에서 이렇게 다양한 야생화를 본적이 없던 터라 내겐 아주 감동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이, ‘이곳에 와서 식물 한 종의 이름이라도 제대로 알고 간다면 그것으로 만족할만하다’고 하셨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그곳에 다녀오고 한참 지나서 그 의미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길가의 풀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고, 이름을 찾아볼 줄도 안다. 눈에 보이는 수많은 식물들의 생김새와 색깔, 향기를 구분하며 이름을 알아보는 것은 단순히 식물 한 종의 이름을 아는 게 아니다. 그것은 숲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을 하나하나 구분하여 알아보는 일이며, 그들과 함께할 인연의 시작이 된다.
그때 보았던 야생화들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다. 야생화의 사진과 글, 송기엽 선생의 사진과 이유미 박사의 글이 잘 어우러져 있다. 야생화의 이름과 분류하는 방법들을 사진과 글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다른 계절도 좋지만 저자는 언 땅을 뚫고 꽃을 피우는 봄이 야생화를 만나는 적기라고 얘기한다. 봄에 우리 꽃을 만나는 방법도 소개한다. 먼저, 1)몸을 낮춘다. 2)천천히 걸으며, 시선을 숲으로, 그리고 3)오감을 동원한다. 우리가 산에 가면, 오로지 정상에 오르려고만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러다보니 지천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못보고 지나간다. 야생화는 여유가 없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야생화의 이름은 생김새에서 따오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이름을 유추할 수 있다. 가족관계도 - 종(種), 속(屬), 과(科), 목(目), 강(綱), 문(門), 계(界) -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같은 과(科)에 속한 식물들은 대동소이한 특징이 있다. 또한 야생화의 이름에서 우리 산천의 지형도 이해할 수 있고, 역사와 문화도 들여다볼 수 있다. 야생화는 그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가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야생화의 종류와 수가 줄고 있다. 정부는 야생화를 보호하기 위해서 규정도 만들고, 민간인들도 야생화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야생화 군락지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불법으로 캐가는 사람들도 있다. 야생화를 보호하려고 철망을 씌웠더니 오히려 사람들 눈에 잘 띄어 누군가 캐 갔다는 얘기는 우리의 씁쓸한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산에서 길을 잃고 발견한 야생화도 있고, 훼손된 군락지 안에서 한줄기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소중한 인연이다. 저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우리 땅에서 야생화를 공유하기를 바란다.
화원에 가면 장미, 백합 등 화려한 꽃을 파는데, 야생화는 팔지 않는다. 만약 돈벌이를 위해서 야생화를 팔았다면 우리 땅에는 더 이상 야생화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화원에서는 야생화의 참 멋을 느낄 수 없을 테니까 야생화를 팔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다. 우리 야생화의 아름다움은 소박함에 있다. 소박한 듯하지만 화려함을 숨기고 있고, 평범한 듯하지만 곳곳에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야생화는 산에서 필 때 더욱 아름답다.
이 책은 천천히, 계절마다 꺼내 읽어야 한다. 한번에 읽으면 재미도, 감동도 덜하다. 7월엔 7월에 피는 꽃들을 만나고, 9월엔 9월에 피는 꽃들을 책에서 찾아보고, 식물원이든, 산과 들로 찾아 다녀볼 일이다. 그게 사람 사는 일이고, 자연 속에서 공감하며 사는 일이다. 온 천지에 피고 지는 야생화의 이름을 안다는 것.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 위대함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생물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 속에서 사는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는 일이다.
* 자생식물 :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을 고향 삼아 절로 자라고 지며 다시 나는 식물
* 외래식물 : 누가 심지 않으면 이 땅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식물(장미, 해바라기 등)
* 귀화식물 : 경로와 태생이 어찌 되었든, 이 땅에 들어와 스스로 씨를 퍼트리며 살아나가는 완전하게 정착한 식물(개망초, 토끼풀, 부레옥잠 등등, 의외로 많다. 귀화식물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인간적이다.)
* 한국자생식물원 : 강원도 평창군 www.koagi.or.kr/NBGK/
입장료 성인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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