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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 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by oridosa 2023. 12. 9.

[죽은 사람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 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 


쿤데라의 [잃어버린 편지들]이란 소설의 시작 부분을 한때 좋아했었다. 체코의 공산당 당수 고트발트가 프라하 광장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하던 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다. 곁에 서 있던 자상한 동지 클레멘티스가 자신의 모자를 벗어 고트발트에게 씌워주었다. 그 모자를 쓴 고트발트의 사진은 수십만 장 찍혀서 교과서에 실리고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몇 년 뒤 클레멘티스는 반역자로 고발돼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의 선전부는 그를 기록에서 삭제하기 위해 모든 사진에서 그를 지워버렸다. 클레멘티스라는 존재는 공식적으로 영구히 사라졌고, 남아 있는 것은 고트발트 머리 위에 얹혀진 그의 모자뿐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쿤데라식의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아마 죽은 사람이 기억되는 가장 기이한 방식 중 하나일 것 같다.

 


죽은 사람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내가 쓴 소설에도 그런 장면들이 있다. 머리를 빗다가 문득 브러시에서 죽은 남편의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그것을 빼내 손가락에 말아보는 아내, 외국여행에서 엽서를 보냈는데 그사이 수신인인 남자가 죽은 걸 알고 그 엽서를 되찾기 위해 우체국에 전화를 거는 여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신발장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새 운동화를 신어보며 어쩐지 발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남자. 하지만 이제는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는 일을 슬프게 쓰고 싶지 않다. 반지를 끼고 잠드는 날의 생각이다. - 86p. 

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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