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녹나무 – 녹나무의 여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가운데 한 소년이 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찾고 있는 건 신비한 영험을 가진 여신이었습니다. 그 영험이란 미래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소년은 왜 미래가 보고 싶은 걸까요? 그건 지금까지 너무도 힘겹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전염병이 퍼져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연달아 재해가 닥쳐 소중하게 여겨 온 것들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이토록 끔찍한 일들뿐이라니, 내 인생은 대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불안에 떠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때 미래를 보여준다는 여신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여신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윽고 소년은 깊은 숲속에 우뚝 선 녹나무를 만난다. 그 나무가 바로 미래를 보여주는 여신의 화신이다.
“소년은 말했습니다. 부탁이 있습니다. 나의 미래를 보여주세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여신은 물었습니다. 미래라면 아주 여러 개가 있단다. 너는 그중에 어떤 미래가 보고 싶은 것이냐. 1년 후? 10년 후? 아니면 한참 지나서 100년 후의 미래인가?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100년 후라면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10년 후인가. 좋아, 그걸로 하자. 소년은 여신님, 10년 후의 미래를 보여주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여신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았다, 그러면 10년 후의 너의 모습을 보여주마. 똑똑히 그 눈에 새겨두도록 하여라.”
여신이 신비한 주문을 외우자 소년의 눈앞에 길이 나타난다. 언젠가 지나온 듯한 기나긴 길이었다. 그곳을 한 남자가 걷고 있다. 찬찬히 바라보니 그는 어른이 된 소년의 모습이었다. 10년 후인 것이다.
“소년은 10년 후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남자는 대답했습니다. 응, 지금 나는 미래를 보여주는 여신을 찾고 있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미래를 알고 싶은 거란다. 그러자 소년은 깜짝 놀랐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이래서야 지금의 나와 완전히 똑같지 않은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은가. 여신님, 좀 더 나중의 미래를 보여주세요. 이번에는 20년 후를 보여주세요. 그러자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험준한 바위산을 한 남자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건 20년 후의 소년이었습니다.
소년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남자는 대답했습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으나 고통에 허덕일 뿐, 내가 어디로 나아가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구나. 그래서 좀 더 나중의 미래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여신을 찾고 있단다. 소년은 놀랐습니다. 20년 후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년은 여신에게 빌었습니다. 부탁입니다. 좀 더, 좀 더 나중의 미래를 보여주세요. 나는 답을 알고 싶습니다.”
소원을 빌자 소년의 눈앞에 여러 풍경이 차례차례 나타난다. 그곳에는 30년 후, 40년 후, 50년 후로 이어지는 소년의 미래가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똑같았다. 여전히 길을 헤매고 여전히 여신만을 찾으며 방황했다. 소년은 탄식하며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
“이제 알겠느냐, 하고 여신은 말했습니다. 몇 년이 흘러도, 아무리 미래로 나아가도 인간은 언제나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이니라. 곧 다가올 앞날에 대한 불안이 사라져 없어지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이니라. 너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그러하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으냐, 인간에게는 미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소년은 물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여신은 대답했습니다. 미래를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바로 지금이니라. 너는 지금 살아 있지 않으냐. 풍족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 있지 않으냐. 먹을 것이 있고 잠잘 곳이 있고 꿈꿀 수 있지 않으냐. 그 모든 게 누구의 덕분이더냐. 너 혼자만의 힘으로 거둔 것인가. 그럴 리 없다. 무엇이 오늘 너의 삶을 받쳐 주었는지 생각해 보아라. ~
살아 있는 한, 너는 그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어제 일 따위 돌아보지 말라.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후회하는 것에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일의 일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염려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한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이니라. 지금 건전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로써 행복한 것이니라. 지금 네가 존재하는 것을 고마워하고 감사하라. 그리하면 어제의 일이 마음에 걸리지 아니하고 내일의 일 또한 불안하지 않으리라.”
“여신의 말을 듣고 소년은 깨달았습니다. 여태까지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지금 살아 있다는 기쁨에 조금도 감사하지 않았구나. 앞으로는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지. 그렇게 마음에 새기고 소중한 깨달음을 주신 여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신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눈앞에는 거대한 녹나무가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 350p.~355p.
녹나무의 여신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소미미디어
Kusunoke no Megami / Keigo Higash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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