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깍기 마지막 일 하러 가는 길 - 오후의 마지막 잔디 / 무라카미 하루키
여름이었다. 그것도 흠뻑 반해버릴 만큼 멋진 여름.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태양은 지글지글 살갗을 태웠다. 내 등가죽은 세 번 벗어지고 이제 완전히 새까매져 있었다. 귀 뒤까지 새까맸다.
마지막 일을 하는 날 아침, 티셔츠와 반바지, 테니스화에 선글라스를 끼고서 라이트밴을 타고 내게 마지막이 될 정원으로 향했다. 차 라디오가 망가져 집에서 가져온 트랜지스터라디오로 로큰롤을 들으며 운전을 했다. 크리던스나 그랜드 펑크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여름의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나는 간간이 휘파람을 불고, 휘파람을 불지 않을 때는 담배를 피웠다. FEN 뉴스 아나운서가 기묘한 억양으로 베트남 지명을 연달아 말하고 있었다.
내 마지막 일터는 요미우리 랜드 근처에 있었다. 맙소사. 어째서 가나가와 현에 사는 사람이 도쿄 세타가야의 잔디깎기 회사에 서비스를 요청한 거지?
하지만 그것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을 권리가 내게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까. 아침에 회사에 가면 칠판에 그날의 일터가 죽 적혀 있고 저마다 원하는 장소를 선택한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은 가까운 장소를 택했다. 오가는 데 시간이 들지 않아 그만큼 많은 건수를 소화할 수 있어서다. 나는 반대로 되도록 먼 곳을 택했다. 항상 그랬다. 모두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아르바이트생 중에서 가장 고참이라 원하는 곳을 맨 먼저 선택할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딱히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멀리멀리 가는 게 좋았다. 먼 곳의 정원에서 먼 곳의 잔디를 깎는 게 좋았다. 먼 곳의 길에서 먼 곳의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설명해봤자 아마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차창을 전부 열고 운전했다. 도회지에서 멀어질수록 바람이 시원해지고 녹음이 우거졌다. 풀숲의 훈김과 마른 흙냄새가 짙어지고 하늘과 구름의 경계가 한 줄 선으로 또렷이 보였다. 멋진 날씨였다. 여자와 둘이서 여름날의 짧은 여행에 나서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나는 차가운 바다와 뜨거운 모래사장을 생각했다. 그리고 에어컨을 틀어둔 작은 방과 까슬까슬한 파란색 시트를 생각했다. 그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모래사장과 파란색 시트가 번갈아가며 머릿속에 떠올랐다.
주유소에서 기름탱크를 가득 채우는 동안에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주유소 옆 풀숲에 벌렁 누워 직원이 기름을 체크하고 창을 닦는 것을 멍하지 바라보았다. 땅에 귀를 대면 여러 소리가 들렸다. 아득한 파도소리 같은 것도 들렸다. 하지만 그건 물론 파도소리가 아니다. 땅에 흡수된 온갖 소리가 뒤섞인 것뿐이다. 눈앞의 풀 잎사귀 위를 작은 벌레가 기어가고 있었다. 날개가 달린 조그만 초록색 벌레다. 벌레는 잎사귀 끝까지 가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딱히 실망한 것 같진 않았다.
십여 분 만에 급유가 끝났다. 직원이 차의 경적을 울려 내게 알려주었다. - 150p.
소설집 [중국행 슬로보트] 중 ‘오후의 마지막 잔디’
중국행 슬로보트 / 무라카미 하루키 / 양윤옥 / 문학동네
Chugoku Yukkino Surou Boto / Haruki Murak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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