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는 연구원으로서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한 운전 면허증에 불과하다. - 생물과 무생물 사이
미국에서 연구를 시작했을 때 연구실에서 내 위치는 박사 후(Post Doctor) 과정이었다. 박사 연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자리는 교육 과정을 끝낸 연구원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기간이다.
이과계 연구원들은 대학 4년 과정을 마치면 대학원으로 진학한다. 일본이든 미국이든 석사 2년, 박사 3년, 합계 5년이 표준이다. 이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연구 프로젝트를 다루면서 여러 편의 연구 논문을 쓰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소속된 연구실의 교수로부터 주제를 받는다. 그리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우리에게 박사 학위는 연구원으로서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한 운전 면허증에 불과하다.
박사 학위란 발바닥에 붙은 쌀알과 같다.
떼지 않으면 기분이 더럽지만 떼어봤자 먹을 수도 없다.
어떤 선배로부터 들은 실없는 농당이다. 사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실험으로 낮이고 밤이고 고생하다가 겨우 박사 학위를 받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후의 인생이 그리 밝은 것은 아니다. 연구원으로서 취직할 수 있는 곳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운이 좋다면 대학의 조교 자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돈을 받는 것은 맞지만 그 외의 것들은 전혀 상상과는 다르다.
우리는 빛나는 희망과 넘칠 듯한 자신감을 가지고 출발선에 선다. 보는 것, 듣는 것마다 날카롭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하나의 결과는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우리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실험 결과를 빨리 알고 싶어 하므로 기꺼이 몇 날 밤을 새기도 한다. 경험을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업무에 능숙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일이 더 잘 진행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어디에 주력해야 하는지, 어떻게 우선 순위를 매겨야 하는지 눈에 보인다. 그러면서 점점 더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 실수 없이 해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렇지만 가장 노련해진 부분은, 내가 얼마나 일을 정력적으로 해내고 있는지를 세상에 알리는 기술이다. 일은 원숙기를 맞이한다.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새는 참으로 우아하게 날개를 펴고 창공을 날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때 새는 이미 죽은 것이다. 이제 그의 정열은 모두 다 타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92p. ~ 94p.
생물과 무생물 사이 / 후쿠오카 신이치, ShinIchi Fukuoka / 김소연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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