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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아케이드 - 그곳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케이드다.

by oridosa 2020. 7. 14.

[세상 끝 아케이드 - 그곳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케이드다. ] 


     그곳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케이드다. 아케이드라고 해도 되나 망설여질 정도였다. 어쩌면 아케이드라기보다 아무도 모르게 우연히 생겨난 세계의 우묵한 구멍이라고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 10p.

     '대체 이런 걸 누가 사는데?' 싶은 물건을 다루는 가게들만 모여 있으니 어쩔 수 없으리라는 자각은 상점 주인들에게도 있다. 점포 입구는 어디나 그 이상 줄이려야 줄일 수 없을 만큼 좁다. 천장은 낮고, 안도 그렇게 넓지 않고, 쇼윈도는 모형 정원 정도의 공간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그런 소박함에 걸맞은 물품들을 취급한다. 사용된 그림엽서, 의안, 휘장, 태엽, 장난감 악기, 인형 전용 모자, 문손잡이, 화석, 하나같이 우묵한 구멍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숨죽이고 있는 듯한 물건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손님은 온다. - 12p.

     어서 오십시오.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상점 주인들은 모두 과장된 몸짓이나 표정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 한마디 말로 손님의 노고를 위로할 수 있다. 기나긴 노정 끝에 가까스로 사야 할 물건을 만난 그들을 진심으로 환영할 수 있다. - 13p.

     "어떤 연극이든 등장인물들은 다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관객과 다른 시간  속에 있죠. 오로지 무대 위에서만 배우의 몸을 빌려 모습을 드러내고, 막이 내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그런 인물들이 입는 옷인 거예요,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건." - 22p.

     나는 의상 담당의 뒷모습이 멀어진 뒤로도 안마당에서 그녀 생각을 했다. 시든 화분과 수많은 의상들로 둘러싸인 방에서 그녀는 홀로 작업한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만 상연될 연극을 위해 등장인물들이 입을 옷을 짓는다. 내가 배달한 꾸러미에서 레이스 쪼가리 하나를 꺼내 어루만지면,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옷감을 만져온 손가락이 금세 그 곳으로 숨어든다. 그녀는 옷감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속삭임을 반지 하나 끼지 않은 늙은 손이 건져 올린다. 그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을 잠시간 무대에 되살려내기 위한 의상을 생각한다. 이윽고 재봉틀에 실을 꿴다. 소맷부리에, 가슴에, 또는 치맛자락에 레이스를 꿰매 붙인다. 구부정한 등이 재봉틀과 하나로 이어져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무대의상 한 벌이 완성된다. - 27p.

세상 끝 아케이드 / 오가와 요코 / 권영주 / 현대문학

 

세상 끝 아케이드 / 오가와 요코 / 권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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