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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아케이드 - 시간과 시간의 틈바구니에 귀 기울이고 싶다.

by oridosa 2020. 7. 28.

[세상 끝 아케이드 - 시간과 시간의 틈바구니에 귀 기울이고 싶다. ]


아케이드에서 나와 바로 정면으로 전찻길 건너편에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다. 흰 문자판에 검은 숫자와 바늘 두 개. 쓸데없는 장식은 일절 없이 무덤덤하리만큼 실용성만 추구하는 크고 둥근 시계다.

예전에 이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목격한 아이는 유괴범에게 잡혀가 두 번 다시 못 돌아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소문을 믿어 유괴범의 시계라고 부르며 무서워했고, 시계를 올려다보거나 그 아래를 지나치는 것조차 피했다.

물론 나도 문자판이 시야에 얼핏 들어오기만 해도 허둥지둥 눈을 감았고, 전찻길 건너편에 볼일이 있을 때는 일부러 멀리 떨어져 있는 횡단보도로 길을 건넜다. 아케이드에서 일직선으로 보이는 위치에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뭔지 모를 저주받은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아 더더욱 무서웠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좋으니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바늘은 천천히 기어가듯 움직일까, 아니면 재까닥 튀듯 앞으로 나아갈까. 시계 속에 손잡이 씨 가게에 있는 것 같은 작은 방이 있어, 그곳에 유괴범이 혼자 살고 있다. 기름통과 걸레를 들고 태엽을 닦는다. 그러면서 틈틈이 유괴하기에 안성맞춤인 어린애가 없는지 문자판의 작은 틈새로 물색한다. 바늘이 움직이는 순간, 공기의 작은 흔들림이 유괴범의 귀에 파동을 일으킨다. 나도 파동을 맛보고 싶다. 시간과 시간의 틈바구니에 귀 기울이고 싶다.

그랬건만 화재가 있은 뒤 무심코 시계에 눈을 주었다가 싱겁게 목격하고 말았다. 어렸을 때 상상했던 만큼 의미심장하지도 않고, 신비스럽지도 않고, 담담히, 당연하게, 그저 정해진 각도만큼 움직이고 끝이었다. - 195p. ~ 197p.

세상 끝 아케이드 / 오가와 요코 / 권영주 / 현대문학

 

세상 끝 아케이드 / 오가와 요코 / 권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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