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아케이드 / 오가와 요코 ]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의 작품 성향
[세상 끝 아케이드 / 오가와 요코 / 권영주 / 현대문학]
오가와 요코의 [세상 끝 아케이드]를 읽으면서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박사가 사랑한 수식]도 이 작가의 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듯 비슷한 면이 있었다. 우선 매우 정적이고 고요하다는 느낌이었다. 자칫 적막감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특이한 성향의 작가다. 고요함은 쓸쓸함으로 이어지고 쓸쓸함은 슬픔으로 이어진다. 착 가라앉는 작품 성향이지만 의외로 따뜻한 정서를 담고 있고, 글 속에서 세상의 경계를 허문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다양한 사연들이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격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인간세상에서 작가는 다른 것 다 지우고 조용함과 농밀한 삶을 이끌어낸다.
아케이드 안에는 여러 상점이 있다. 결코 사람들이 좋아할만하다고는 할 수 없는 물건들을 만들고 판다. 그들은 물건에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는다. 그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을 세상에 내보이는 물건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안으로 들어가는 삶이다. 아케이드는 곧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이룬다.
* 세상 끝 아케이드 - 시간과 시간의 틈바구니에 귀 기울이고 싶다.
* 세상 끝 아케이드 - 그곳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케이드다.
'대체 이런 걸 누가 사는데?' 싶은 물건을 다루는 가게들만 모여 있으니 어쩔 수 없으리라는 자각은 상점 주인들에게도 있다. 점포 입구는 어디나 그 이상 줄이려야 줄일 수 없을 만큼 좁다. 천장은 낮고, 안도 그렇게 넓지 않고, 쇼윈도는 모형 정원 정도의 공간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그런 소박함에 걸맞은 물품들을 취급한다. 사용된 그림엽서, 의안, 휘장, 태엽, 장난감 악기, 인형 전용 모자, 문손잡이, 화석, 하나같이 우묵한 구멍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숨죽이고 있는 듯한 물건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손님은 온다. - ‘의상 담당’, 12p.
여기에는 10개의 아케이드 상점 이야기가 나온다.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론 집안의 비극을, 개인의 아픔을, 쓸쓸함을 담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이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내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는 것이 때론 힘들고 아프지만 잘 살아낼 수 있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니까. 다 읽고 나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활짝 펴진다. 용기를 얻는다.
대학 노트가 한 권 한 권 글자로 메워지고, 연필은 몽땅하게 줄어들었다. 등이 쑤시고, 공책은 땀으로 축축하고, 눈도 가물거리지만, 신사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유도 생각하지 않고, 괜히 무리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을 형성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손에 들고 찬찬히 바라보며 감촉을 확인한 뒤 있던 곳에 되돌려놓는다. 그 일을 한없이 반복한다. 과거에 딸이 탐색했던 길을 따라가며 희미한 자취라도 남아 있지 않은지 자세히 살펴보고, 그 애가 그렇게 바랐어도 도달하지 못했던 길을 대신 밟는다. - '백과사전 소녀', 52p. ~ 53p.
의상 담당 / 백과사전 소녀 / 토끼 부인 / 고리 집 / 종이 상점 시스터 / 손잡이 씨 / 훈장 상점 미망인 / 유발 레이스 / 유괴범의 시계 / 포크댄스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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