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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실의 원고 - 고백하지 않은 사랑은 남은 인생 동안 자신을 따라다닐

by oridosa 2020. 8. 17.

[128호실의 원고 - 고백하지 않은 사랑은 남은 인생 동안 자신을 따라다닐 ] 


나는 로메오(맹세컨대 정말 그 웨이터 이름이야)에게 묻기 전 폭풍 속의 고요를 즐겼어(유급휴가 공식발표 한 달 전 찾아와주고 자리도 차지하고 있는 손님을 보고 레스토랑 주인이 불평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해변에서 주운 원고에 대해 말을 꺼내자마자 그 젊은이의 눈이 감동으로 반짝이더라고. 그러면서 자기 쉬는 시간에 커피 한잔하자는 거야. 여기서 밝혀야 할 건 내가 그때 바람이 불 때마다 이가 덜덜 떨리는데도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게다가 아직까지 완벽하게 선탠이 된 상태라는 거지.

우리의 로메오(아마 이탈리아 출시 엄마가 지은 이름이겠지?)가 원고를 습득한 곳은 로스코프 도서관이래. 그는 문학에 푹 빠진 청년이라 틈나는 대로, 도서관에 가고, 그곳 화실에서 어린 학생들을 돕는 활동도 하고 있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청년을 보고 흥분하기 전에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그가 도서관에 자주 드나드는 이유는 도서관 사서에게 반했기 때문이라는 거야. 사람을 독서로 이끄는 계기는 무엇이 됐든 상관없다고 네가 늘 말했었지?

어느 겨울날 로메오가 도서관에서 지역단체 봉사활동을 하며 짝사랑 상대를 몰래 주시하고 있었어. 그때 한 남자가 안내 데스크에 와서 책들을 기증했대. 로메오는 바로 그 책 상자 맨 아래에서, 귀퉁이가 접히고 노르스름해진 십여 권의 소설책에 깔려있던 원고를 손에 넣었어. 나는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요즘 내 머릿속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그 원고를 말이야.

원고를 다 읽은 로메오는 고백하지 않은 사랑은 남은 인생 동안 자신을 따라다닐 거라는 결론을 내렸어.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줄리(이것도 맹세코 진짜 이름이야. 그녀의 이름이 정말 맞다니까!)라는 사서에게 자신의 불같은 사랑을 고백했지...... 그들은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지만, 그건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야. 바라건대 ‘로메오’와 ‘줄리’가 선조의 비극을 이겨내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 54p. ~ 55p.

로메오 : ‘로미오’의 프랑스식 발음
줄리 : ‘줄리엣’의 약칭

128호실의 원고 / 카티 보니당 / 안은주 / 한스미디어

 

128호실의 원고 / 카티 보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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