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한국어 -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 2021. 5. 2.
학교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나왔지만 시간은 이제 겨우 정오를 지났을 뿐이었다. 맨해튼 42번가 버스 터미널에서 166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뜬금없이 은혜를 생각했다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였을까. 영어로 된 단문 메시지밖에 보낼 수 없는, 스마트하지 못한 폰이라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엮어 헤어진 그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을 게 분명하니까. 은혜는 안녕할까? 아까 수업 시간에 웃던 학생들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그건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보다 유난히 더 푸르고 높아 뵈는 하늘에서 하얗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햇빛이 화살처럼 창문을 뚫고 쏟아졌다. 버스는 정해진 루트를 돌고 돌아 맨해튼과 뉴저지를 이어주는 링컨 터널 속으로 진입했다. 터널은 내 인생처럼 늘 어둡고 축축하고 뭔가로 막혀 있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춥니. 버스가 덜컹일 때마다 어디선가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39p.
초급 한국어 / 문지혁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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