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급 한국어 - 잘 지내냐는 말은 무력하다.

by oridosa 2021. 5. 5.

[초급 한국어 - 잘 지내냐는 말은 무력하다. ] 2021. 5. 4.

 

34
매일 지나다니는 학교 독문과 건물 벽에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크게 적혀 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아래엔 작은 글씨로 이렇게.

“한계에 맞서세요. 독일어를 배우세요” - 65p.

 

37
잘 지내냐는 말은 무력하다. 정말로 잘 지내는 사람에게도. 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도.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잘 지낸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오히려 나의 진짜 ‘잘 지냄’에 관해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수업 시간 내내 ‘How are you?’와 ‘어떻게 지내요?’, ‘I’m doing good’과 ‘잘 지내요’를 기계적으로 말하고 반복하고 따라 하게 하면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크고 분명하고 자신감 있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그 언어가 갖는 본래의 의미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누군가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언제였더라. 받아쓰기 시험지를 나눠 주며 나는 아무도 진심으로 묻지 않는, 아무에게도 진심으로 대답하지 않는 나의 안부에 관해 잠시 생각했다. Am I doing good?

 

38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자주 하는 농담.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피를 흘리며 운전석에 앉아 있는 한국인 교포에게 미국 경찰이 다가와 묻는다.

“하우 아 유?”

그러자 교포는 희미한 웃음을 띄며 자동 반사로 답한다.

“파인, 땡큐, 앤유?”

미국 경찰은 당황했다가 곧 감동한다. 아니, 지금 이 사람은 피를 흘리면서도 내 안부를 묻고 있잖아. - 74p.

 

초급 한국어 / 문지혁, Ji Hyuck Moon / 민음사

초급 한국어 / 문지혁, Ji Hyuck Moon / 민음사
초급 한국어 / 문지혁

 

* 저자의 책을 소설이 아닌 여행에세이로 먼저 접했다. 글이 깔끔하다.

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in the blue 17) / 문지혁 / 쉼
이야기가 번지는 곳 뉴욕 (in the blue 11) / 문지혁 / 쉼


관련글 :

 

초급 한국어 – 시간의 세 구분. 아이온(aion), 크로노스(chronos), 그리고 카이로스(kairos).

[초급 한국어 – 시간의 세 구분. 아이온(aion), 크로노스(chronos), 그리고 카이로스(kairos). ] 한국어에서 시간은 ‘시간’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지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을 세 가지 단어로 구

oridosa.tistory.com

 

 

초급 한국어 -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초급 한국어 -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 2021. 5. 2. 학교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나왔지만 시간은 이제 겨우 정오를 지났을 뿐이었다. 맨해튼 42번

oridosa.tistory.com

 

[이야기가 번지는 곳 뉴욕] 매력적인 도시, 뉴욕 그리고 에세이

[이야기가 번지는 곳 뉴욕 / 문지혁 / 쉼] 제목 : [이야기가 번지는 곳 뉴욕] 매력적인 도시, 뉴욕 그리고 에세이     뉴욕을 배경으로 추리소설을 쓴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뉴욕 그 자체

oridosa.tistory.com


당신 마음에 가 닿는 내 다리도 그렇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