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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백 년을 걷다 ] 근대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문화유산 탐방

by oridosa 2021. 10. 7.

[하루에 백 년을 걷다 ] 근대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문화유산 탐방

 

[하루에 백 년을 걷다 / 서진영 글, 임승수 사진 / 21세기북스]

 

하루에 백 년을 걷다
하루에 백 년을 걷다


저자 서진영은 그동안 전통문화, 문화유산에 관한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 결과물을 책과 글로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이번에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이 책을 가볍게 집어 들었다가 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근대문화유산을 테마로 여행안내 비슷한 내용이려니 했다. 그러다가 ‘우리에게 근대란 어떤 의미인가’의 물음에 마주하게 되었다. 

근대문화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인용되는 소재다. 우리의 근대는 중세와 현대의 문화와 차별화된 이유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 뒤에는 민족의 아픔과 상처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수백 년 전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백 년의 가까운 과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역사성' 때문이다. 근 백 년의 시간 동안 우리가 겪었던 일들은 무구한 역사의 시간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크다. 과거를 살펴 미래를 준비하는 적절한 동기가 될 것이다. 

 

하루에 백 년을 걷다 / 서진영, 임승수
하루에 백 년을 걷다 / 서진영, 임승수


내게는 수백 혼은 수천 년 전에 살았던 멀고 먼 이야기보다는 나와 살 비비고 산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가 살아온 시간들부터 시작하는 것이 부담 없이 느껴졌다. 역사를 통해 지금의 나는 어디에서 왔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근대는 개항과 함께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의반 타의반 개항을 하면서 외국문화가 들어왔다.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 옷차림, 먹을 것, 건물 등이다. 기존에 봐왔던 것과 다른 것이 들어오니 얼마나 신기했을까. 그 신기함, 신선함이 요즘에 근대문화유산을 대하는 사람들의 첫 마음일 것이다. 우리에게 근대문화유산은 개항에 의한 변혁과 일제강점기의 암울함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결코 편안히 바라볼 수만 없는 대상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찾아다니는 이유는 오로지 '기억'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찾지 않으면 곧 잊힐 대상들이 바로 근대문화유산이다. 한편에선 보존을, 또 한편에서는 불편함과 분노를 내세운다. 이해관계라하면 너무 무책임한 말이다. 근대는 뭔가 확실히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그 일을 하지 못하면 세상은 또 어떤 형태로든 암울한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도 일제강점기의 문화유산이 많다. 그리고 나는 틈날 때마다 그런 곳을 찾는다. 출발은 가벼운 여행자의 마음으로, 돌아올 때는 어두운 역사를 잊지 말자는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미약하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귓속말을 하고 싶다. 어디론가 훅 떠나고 싶을 때, 웃고 떠들고 탕진하는 그런 여행 말고 이런저런 생각도 좀 하고 차분해지고 싶은 순간에 하루, 아니 반나절이라도 근대를 거닐어보는 건 어떠냐고

근대문화유적에 대한 활용방안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없애버리자는 의견도 일리가 있고, 아픈 역사일지라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저자는 활용방안의 긍정적인 사례를 하나 들려준다. 보존이라는 이름 하에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놓고 관리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이왕이면 역사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고 기억할 수 있는 방안이면 좋겠다. 

구 서경사는 해방 이후 해병대 사무실, 한전 사무실, 농촌지도소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었다. 일본 불교를 포교하려 한 것은 신사참배를 강요하거나 우리말과 역사 교육을 금지한 것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그 의도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문화적으로 지배하고자 민족말살정책을 펼친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본다. 때문에 오늘날에 다른 무엇이 아닌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34호 전순임 판소리 전수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반갑게 느껴졌다. 보존이라는 명목을 앞세워 빈 공간으로 두지 않고 생채기 난 자리에 우리 전통문화의 숨결을 불어넣어 생기를 더하고 있으니 말이다. - 205p.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전쟁, 학살과 같이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이나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찾아가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을 가리키는 말이다. - 154p. 

건물과 길에 이야기가 붙으면 의미가 생긴다. 암울했던 시기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그 의미는 더 깊고 짙어진다. 근대문화유산의 대부분이 그렇다. 잊지 않기 위해서는 찾아가야 한다. 찾아가는 마음으로 역사는 더욱 확실해진다.

 

 

하루에 백 년을 걷다 - 서울 기상관측소, 국가등록문화재 제 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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