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 세상이 수많은 징조와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읽지 못하는구나 ]
작가는 미스터리의 해답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소설을 쓴다. 그러나 작가가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그 해답을 불쑥 내미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독자는 작가가 그 해답을 내놓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고 책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다.
독자가 책을 놓지 않도록, 작가는 소설 묘사의 정황 곳곳에 해답의 단서를 묻어둔다. 그러면 독자는 나름의 합리적인 독법으로 해답을 추리하면서, 소설을 읽는 재미와 합리적으로 추리하는 재미를 동시에 누린다. 미스터리 소설에 훈련된 독자들은 다 알 테지만, 미스터리의 해답은 바로 그 작가가 묘사한 정황 속에 모두 들어 있다. 그러니까 해답은 작가의 정황 묘사 속에 다 녹아 있다는 뜻이다.
번역을 끝내고 나니 역자는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든다. 고백하건대, 역자는 정답을 내놓았을 때야 비로소 작가가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는 세부 정황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를 이해했다. 다시 말해서, 작가가 수수께끼의 해답에 접근하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데도 역자는 그것을 읽지 못한 것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하는 경험이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든다’고 한 것은, 세상이 수많은 징조와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읽지 못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도 비슷한 느낌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 역자의 글 중에서
양들의 침묵 / 토머스 해리스 / 이윤기 /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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