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연필이다 - 연필과 명상 ]
연필이라는 게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인 것 같아요. 스튜디오 이름처럼 연필로 명상한다고 하는데, 스테프들이 처음 왔을 때는 '나뭇잎을 그려라, 나무를 그려라'하면 그 이미지를 생각으로 그려요. 그런데 이건 연필을 들고 나뭇잎이든 나뭇가지든 사람이든 실물을 잘 들여다보면서 그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죠. 그릴 때 느낄 수 있는 교감같은 게 다르고 또 그림을 볼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 같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건데, 어머님들이 항아리를 닦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장독대 항아리를 단지 일로써 닦는 게 아니라 닦으면서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많은 시름을 잊기도 하는데요. 연필에 그런 지점이 있어요. 깎다 보면 짧은 순간이지만 느낄 수 있는 생각이 있고요. 그리고 점점 손때가 묻는 걸 보면서 느껴지는 체취도 있고요.
가장 중요한 이유라면 기회가 공평하다고 할까요. 고가의 장비를 떠나서 그냥 흑심을 감싸고 있는 나무토막 하나 가지고 자기 노력으로 그림에 다가가는 거니까요. 가장 정직하고 올바르고 동기가 좋은 물건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 나는 연필이다 / 박지현 / 퓨처미디어] 212p.,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의 안재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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