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라듸오 -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든다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고향 인근에서 소리와 빛을 열어가던 그 시절의 어느 순간이라고 할 것이다. 아버지가 라디오를 수리하는 동안 가게 안에 몰려든 구경꾼들이 고장난 라디오에서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함성과 박수로 반기는 광경은 마술 퍼포먼스가 벌어지는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또한 섬진강변 제재소에서 침수된 모터를 나흘에 걸쳐 완벽하게 수리한 후에 고사상을 차려놓고 고참 '오시'(나무 켜는 사람)로 하여금 시운전을 하게 했던 장면도 그럴 듯하지만, 더욱 장관은 지리산 청암골에 전깃불이 환하게 켜지던 밤의 풍경이었다.
전기에 관한 한 만능해결사였던 아버지는 하동읍내 장터에서 나무장사를 하는 노인의 부탁으로 산골짜기에 발전시설을 하게 되었다. 소문을 듣고 모여든 청암골 사람들이 초저녁부터 멍석을 깔아놓고 이제나저제나 난생 처음 보는 전등 빛을 보기 위해 학수고대하는 동안 시끌벅적 덕담이 오고가고 어둠은 점점 짙게 내려앉았다. 마침내 작업을 끝낸 아버지가 스위치를 가동하자 지리산 계속에서 물을 퍼 올리는 물레방아와 연결된 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개의 전구가 일제히 청암골의 까만 밤을 밝혔을 때 감격에 못 이겨 서로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던 옛사람들의 흥겨운 잔치마당에는 밝은 앞날을 기약하는 희망이 넘치는 듯 했다. - 17p.
아버지의 라듸오 / 김해수, 김진주 / 느린걸음
금성A-501,등록문화재 제559-2호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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