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데스의 유산 / 나카야마 시치리 ] 안락사는 범죄인가, 최후의 의료행위인가.
[닥터 데스의 유산 / 나카야마 시치리, Shichiri Nakayama / 문지원 / 블루홀6 ]
1. 나쁜 의사 선생님이 와서 우리 아빠를 죽였어요.
“저기, 있잖아요. 나쁜 의사 선생님이 와서 우리 아빠를 죽였어요.”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경시청에 걸려온 아이의 전화는 장난전화로 오해받기 충분했다. 그러나 담당경찰은 아이의 집에 찾아가서 상황을 파악한다. 아이의 말대로 아이의 아빠는 중병으로 투병 중이었는데, 의사와 간호사가 다녀간 후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져서 두 번째 의사가 와서 사망진단을 했다. 한 의사가 아니라 두 의사가 다녀간 사실이 마음에 걸려서 수사한 결과, 처음에 다녀간 의사는 ‘닥터 데스’라 불리는 안락사 전문 의사였다. 이후 비슷한 사건이 접수되고, 경찰은 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다. 닥터 데스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안락사 의뢰를 받는다.
닥터 데스는 당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평안하고 고통 없는 죽음을 약속합니다. 비용은 들지만 안락사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실비, 구체적으로 약제와 장치에 관한 실비만 받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개인정보를 완벽하게 보호합니다. 지금까지 안락사를 여러 차례 수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법보다, 세상의 시선보다 당신의 사람이 소중한 분은 연락 주십시오. - 62p.
사이트에 접속자도 많고, 실제 안락사를 의뢰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경찰. 게다가 안락사로 포장한 살인사건도 일어난다. 유사 사건을 수사하며 닥터 데스의 실체에 접근하려 한다. 목격자 진술을 받고 수사를 진행하지만 전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경찰은 위험한 작전을 펼친다. 닥터 데스에게 안락사를 의뢰하는 덫을 놓자는 것. 하지만 닥터 데스는 한 수 위였다. 경찰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물을 친 건 우리였지. 하지만 놈은 인터넷이라는 더 거대한 그물로 우리를 꼼짝 못 하게 묶어 뒀어(179p).”
당신 딸의 본명과 입원 장소를 알아내는 것은 제게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 병원은 보안이 매우 허술해서 마음만 먹으면 사야카 씨가 꽂고 있는 링거팩을 그대로 염화칼륨제제로 쉽게 바꿔치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원하지 않는 환자를 안락사시키는 것은 제 룰에 어긋나는 행위이므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경고하겠습니다. 더는 제 뒤를 쫓지 마십시오. - 181p.
2. 안락사는 범죄인가, 최후의 의료행위인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닥터 데스의 유산]은 민감한 사안인 안락사를 다룬다. 안락사는 살인행위라는 것과 편안한 죽음을 유도하는 최후의 의료행위라는 주장이 맞선다. 소설은 안락사를 의뢰하는 가족(보호자)과 의사(닥터 데스), 닥터 데스를 잡으려는 경찰의 이야기다. 작가는 안락사에 대한 입장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사가 생각하는 안락사,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의 안락사 유혹, 안락사를 핑계로 쾌락살인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닥터 데스에 대한 의혹, 여러 입장과 그에 따른 모순과 논란이 있다. 이것이 찬반으로 결정될 문제인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안락사의 이름을 빌린 쾌락살인. 아소가 그 말을 했을 때는 과연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딸을 안락사 시켜주지 못해 후회하는 마스부치를 보며 생각이 점차 바뀌었다. 닥터 데스는 정말 단순한 쾌락살인자일까. 어쩌면 닥터 데스야말로 종말기 연명치료의 숨은 선구자 아닐까. - 85p.
3. 안락사의 유혹과 형사의 의무
이 책에서는 사명감 높은 경찰로서의 이누카이와 난치병을 앓는 딸의 아버지로서의 이누카이의 번뇌를 심도 있게 드러낸다. 안락사를 범죄로 정의하고 범인을 잡으려 하지만 막상 사건 현장과 자신이 처한 현실 사이에서 그는 좌절하고 고뇌한다. 그것은 환자와 가족, 의사 모두에게 적용되는 괴리감이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작가는 닥터 데스가 그 길을 걷게 된 계기와 생사관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가치관이 있는 것이다.
사야카가 매번 투석으로 괴로워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었다. 안락사는 투병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에게는 감미로운 유혹이다. 머리를 흔들어 뿌리쳐내도 불쑥불쑥 고개를 치켜드는 사위스러운 유혹. - 184p.
“다만 기회가 있으면 닥터의 생사관을 듣고 싶어요. 저는 아버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그런 방법을 택했습니다만 평소 안락사를 생업으로 삼는 의사는 과연 어떤 윤리관에 자신을 맞추고 있는지, 의료와 형벌의 틈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꼭 천천히 듣고 싶습니다.” - 323p.
닥터 데스는 잡히지 않는다. 경찰은 닥터 데스를 체포해야 하는 현장에서 마지막 안락사를 지켜보며 열린 결말을 내놓는다. 이 책에서는 찬반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안락사를 한번 더 공론화 시키는 것이 최대의 목적인 셈이다.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1차 문제를 넘어 2차, 3차 파생되는 사회문제가 쌓여있고, 이 책은 첫 출발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론과 언론이 시끌시끌했다. 수사본부에서는 이미 안락사를 의뢰한 가족을 자살방조 혐의로 송치했으나 그 처분에 대한 여론은 둘로 나뉘었다. 즉 안락사를 정당한 개인의 권리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자살 또는 자살방조로 사법부의 손에 맡길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문제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에서 그치지 않고 해마다 치솟는 의료보험비 문제까지 내포한다. 이 때문에 ‘닥터 데스’에 의한 안락사를 과연 범죄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우리는 죽을 권리도 없느냐고 누군가 외친다. 그러면 자살은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종교인들이 반박한다. 연명치료는 가족에게 부담되므로 중단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주장한다. 그러면 의료비 삭감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환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며 후생노동성 간부 출신은 눈살을 찌푸린다. - 284p.
4. 닥터 데스(Dr. Death), 잭 케보키언
의사 잭 케보키언은 불치병에 걸린 말기 환자 130여 명의 자살을 도와 ‘죽음의 의사’로 유명해졌다. 그는 미시간대 의대 재학 시절 사형수들에게 마취제로 사형당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서 이들의 시신을 의료 해부용으로 사용하고 장기를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1987년에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안락사에 대해 연구했다. 1998년, 케보키언은 미시간 주에서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토머스 유크에게 치사량의 독극물을 주입해 사망하게 했다. 이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방송을 통해 방영되었고, 안락사 논란으로 확산되었다. 1999년 2급 살인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가석방되었는데, 가석방 조건은 더는 안락사를 돕지 않고 안락사와 관련된 자문이나 상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케보키언은 2007년 가석방으로 풀려났고, 2011년 심장과 신장 질환에 시달리다 숨을 거뒀다. 닥터 데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안락사(존엄사)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고,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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