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을 거역하지 말고,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려야 해. -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도둑 까치 ]
"자네 적성이 법률이 아닌지도 모르겠어." 하고 어느 날 혼다 씨가 내게 말했다. 어쩌면 그는 내 뒤로 20미터 정도 떨어진 누군가를 향해 말했는지도 모른다.
"그런가요." 하고 나는 말했다.
"법률이란 건, 요컨대 말이야, 지상의 만사를 관장하는 거야. 음은 음이며, 양은 양인 세계 말이야. 나는 나이며 그는 그인 세계지. '나는 나, 그는 그, 가을날의 해 질 녘.' 그런데 자네는 거기에 속해 있지 않아. 자네가 속해 있는 세계는 그 위거나 아래야."
"그 위거나 아래,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겁니까?" 나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그렇게 질문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건 아니지.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은 나쁘다, 그런 유가 아니야. 흐름을 거역하지 말고, 위로 가야 할 때는 위로 가고, 아래로 가야 할 때는 아래로 가야지. 위로 가야 할 때는 가장 높은 탑을 찾아서 그 꼭대기에 올라가면 되고, 아래로 가야 할 때는 가장 깊은 우물을 찾아 그 바닥으로 내려가면 돼. 흐름이 없을 때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되고. 흐름을 거역하면 모든 게 말라 버려. 모든 게 말라 버리면 이 세상은 암흑이지. '나는 그, 그는 나, 봄날의 초저녁.' 나를 버릴 때, 나는 있어."
"지금은 흐름이 없는 때인가요?" 하고 구미코가 물었다.
"지금은 없어." 하고 혼다 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꼼짝 않고 가만히 있으면 돼.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다만 물은 조심하는 편이 좋겠어. 앞으로 이 사람이 물과 관련된 일로 고생할지도 모르겠어. 있어야 할 장소에 없는 물. 있어서는 안 되는 장소에 있는 물. 아무튼 물을 아주 조심해야겠군."
옆에서 구미코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웃음을 꾹 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93p.
"흐름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건 괴로운 일이야. 그러나 기다려야 할 때는 반드시 기다려야 해. 죽었다 생각하고 있으면 돼" - 95p.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도둑까치 / 무라카미 하루키 / 김난주 / 민음사
Haruki Murak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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