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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씨가 죽고 내게 유산을 남겼다. -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도둑 까치

by oridosa 2023. 4. 28.

[혼다 씨가 죽고 내게 유산을 남겼다. -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도둑 까치 ]

 

4시쯤에 누군가가 현관벨을 눌렀다. 집배원이었다. 그는 등기라고 하면서 내게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인수증에 도장을 찍고 봉투를 받아 들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가위로 봉투를 잘랐다. 고풍스러운 두루마리 화지에 역시 붓으로 술술 써 내려간 편지였다. 교양 있는 사람인지 글자가 상당히 유려했지만, 내게 그런 유의 교양이 없는 탓에 읽기가 몹시 힘들었다. 문체도 상당히 고풍스럽고 정중했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꼼꼼하게 읽어 나가자, 거기 쓰인 내용을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편지에 따르면, 우리가 오래전에 찾아뵙곤 했던 점쟁이 혼다 씨가 이 주일 전에 메구로의 자택에서 운명했다고 한다. 심장 발작이었다. 의사 말이, 별 고통 없이 짧은 시간에 숨을 거뒀을 것이라고 한다. 혼자 사는 몸이었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해야 하겠지요, 하고 편지에는 쓰여 있었다. 아침에 가사 도우미가 청소를 하러 왔다가, 고타쓰에 엎드려 죽은 그를 발견했다.

 

마미야 도쿠타로 씨는 전쟁 중에 육군 중위로 만주에 주둔했고, 작전 중에 묘한 우연으로 혼다 하사와 생사를 함께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혼다 오이시 씨의 죽음에 임해, 고인의 강경한 유지를 따라 유족을 대신해서 고인의 유품을 배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고인은 유품의 배분에 대해서 아주 상세한 지시를 남겼다. ‘그것은 마치 본인이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상세하며 면밀한 유서였습니다. 그리고 오카다 도오루 씨에 대해서도, 어떤 기념품을 받아 주었으면 매우 고맙겠다는 뜻을 유서에 밝혔습니다.’하고 편지에 쓰여 있었다. ‘다망하실 줄은 아오나, 고인의 유지를 헤아려 주시고,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조촐한 기념품으로 이를 간직해 주시다면 역시 앞날이 오래지 않은 한 전우로서 더없는 기쁨이겠습니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도쿄에서 묵고 있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 ‘분쿄구 혼고 2로 – 마미야 모모’라고 쓰여 있었다. 친척 집에 머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부엌 식탁에서 답장을 썼다. 일단은 엽서에 용건만 간단하게 적어서 보내려 했는데, 막상 펜을 들고 보니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인과는 인연이 있어 생전에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혼다 씨가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니, 몇 가지 추억이 뇌리를 오가는군요. 나이 차도 많은 어르신이었던 데다, 불과 일 년 남짓 드나들었을 뿐이었지만, 고인에게는 뭐랄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혼다 씨가 저같은 사람에게 이름까지 지목해서 유품을 남기실 줄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저에게 그런 유품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스럽습니다. 그러나 고인의 뜻이 그러하다면, 물론 기꺼이 받겠습니다. 사정이 허락하실 때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쓴 엽서를 동네 우편함에 넣었다. “죽어야 삶도 있으니, 노몬한.” -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212p. ~ 214p.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도둑까치 / 무라카미 하루키 / 김난주 / 민음사 Haruki Murakami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도둑까치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도둑까치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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