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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예언하는 새

by oridosa 2023. 5. 25.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예언하는 새 ]

 

“만약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라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소멸하지 않고 나이를 먹지도 않고, 이 세상에서 계속 건강하게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래도 인간은 여전히,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이것저것 생각할까요? 우리는 많든 적든, 여러 가지를 계속 생각하잖아요. 철학이나 심리학이나 논리학이나. 그리고 종교도 있고, 문학도 있고. 그런 유의 복잡한 사고와 관념은, 만약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지구상에 안 생기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가사하라 메이는 거기서 불쑥 말을 끊고, 잠시 침묵했다. 그동안 ‘그러니까’라는 말만이 있는 힘껏 찢겨 나간 사고의 단편처럼 우물 속 어둠에 가만히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마음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또는 그다음 말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잠자코 그녀가 말을 다시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만약 가사하라 메이가 지금 당장 나를 죽이려 한다면,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불쑥 머리에 떠올랐다. 그녀는 어디서든 큼지막한 돌멩이를 들고 와 그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하면 된다. 몇 개를 떨어뜨리면 그중 하나는 내 머리에 맞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내 생각인데, 사람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아 있는 의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잖아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계속 똑같이 살 수 있다면, 누가 사는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겠어요. 그럴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예를 들어서, 가령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쳐도, ‘시간은 아직 충분히 있다. 언젠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이 순간에 생각지 않으면 안 돼요. 내일 오후에 내가 트럭에 치여 죽을지도 모르니까. 사흘 후 아침에 태엽 감는 새 아저씨가 우물 속에서 굶어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않나요?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란 게 반드시 필요한 거죠.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죽음이란 존재가 선명하고 거대하면 할수록 더욱이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생각을 하는 거죠” - 154p. ~ 156p.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예언하는 새 / 무라카미 하루키 / 김난주 / 민음사

Haruki Murakami

Nejimakidori kuronikuru vol. 2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예언하는 새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예언하는 새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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