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우물에 늘 마음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예언하는 새 ]
일주일 후에 그가 보낸 답장이 날아왔다. 실은 자신도 그 후에 왠지 모르게 오카다 씨가 마음에 걸렸다고 그는 썼다. 당신과 아주 오래 속을 터놓고 얘기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그날 갑작스럽게 볼일이 생겨서 밤까지 히로시마에 꼭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오카다 씨에게 편지를 받으니 나로서도 기쁘다. 내 생각에, 혼다 씨가 나와 당신을 만나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혼다 씨는 나와 당신이 만나는 것을, 나와 당신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유품을 전한다는 명분으로 나를 당신에게 보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당신에게 전한 유품이 빈 상자였다는 것을 보면 설명이 된다. 나를 당신에게 보낸 것이 혼다 씨의 유품이었을 것이다.
‘오카다 씨가 우물에 들어가셨다고 해서 저는 크게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우물에 늘 마음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위험한 일을 당했으니 우물이라면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넌더리가 났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우물을 보면, 그 안을 꼭 들여다보곤 합니다. 볼 뿐만 아니라, 만약 물이 말라 버린 우물이면 그 속에 내려가 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마 우물 속에서 무언가와 조우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겠지요. 거기에 들어가면, 그리고 거기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어쩌면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해서 저의 인생이 회복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기대를 하기에 저는 이미 나이를 너무 먹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저의 잃어버린 인생의 의미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에 의해, 왜 상실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 눈으로 밝혀내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저는 자신이 지금보다 한층 더 상실되어도 상관없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앞으로 몇 년 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저는 기꺼이 그 무거운 짐을 지려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 331p.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예언하는 새 / 무라카미 하루키 / 김난주 / 민음사
Haruki Murakami / Nejimakidori kuronikuru vol.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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