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읽어야 한다. 첫째는 뉴욕의 서점을 배경으로 등장인물과 책과 서점에 관한 소설이고, 둘째는 실제 뉴욕의 서점과 뉴욕의 출판현황, 서점과 책의 미래에 대한 문화순례기다.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 뉴욕의 서점과 책 이야기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 서진 / 푸른숲
작가 서진의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를 읽으면서 작가의 내공과 소재의 참신함에 감탄을 했던 터라 후속작이 반가웠다. 이 작품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그려내는 뉴욕의 거리, 그리고 서점과 책 이야기로 다시 한번 작가의 내공을 확신한다. 뉴욕 문화의 다양성과 저력뿐만 아니라, 광기에 가까운 북원더러(book wanderer)들의 책 사랑과 그 애틋함이 읽는 내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읽어야 한다. 첫째는 뉴욕의 서점을 배경으로 등장인물과 책과 서점에 관한 소설이고, 둘째는 실제 뉴욕의 서점과 뉴욕의 출판현황, 서점과 책의 미래에 대한 문화순례기다.
첫 번째 :
서진(등장인물 1, 주인공, 작가의 이름과 같다)은 소설 [도서관을 태우다]를 쓰려고 하지만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서진은 뉴욕에서 서점 순례를 하게 된다. 서점을 돌아다니며 소재도 얻고, 글 쓰는 계기도 얻기 위함이다. 그리고 제니스를 만난다.
제니스(등장인물 2)는 미래에서 왔다. 미래사회는 [도서관을 태우다]라는 소설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된다. 이 책 때문에 도서관에 불을 지르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그래서 불온서적이 된다), 미래의 지도자는 제니스를 과거로 보내서 이 책이 쓰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같다. 제니스는 서진에게 접근하고 서진이 책을 쓰지 못하게 감시하고 방해한다. 또 제니스는 도서관이 불타서 책이 없어질 때를 대비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간직하고픈 책 세 권을 적어나간다.
서진은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로버트(등장인물 3)를 만난다. 로버트는 서진보다 앞서서 [도서관을 태우다]를 쓰려고 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로버트도 30년간 책을 쓰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도서관을 태우다]를 쓰려고 했던 사람, 쓰려는 사람, 쓰지 못하게 막는 사람의 이야기가 서점 순례와 병행하며 전개되는데, SF 판타지와 추리소설과 여행기의 성격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재미있다. 책 [도서관을 태우다]는 여전히 쓰이고 있는 중이다. 누가 책을 쓸 것인지, 그 책이 완성될 것인지는 모른다. 그 책 때문에 정말 미래의 도서관이 불타게 되는지도 알 수 없다. 등장인물들을 따라가며 한편으로는 궁금증을 키우고, 또 한편으로는 궁금증을 해결해야 한다. 종이책은 통제하기 어렵고 정보화된 책은 통제하기 쉽다는 미래의 음모도 생각해 볼 만하다.
두 번째 :
이 책은 서점의 역할과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지만, 단순히 책을 팔아 이윤을 챙기는 곳이 아니다. 서점은 작가와 독자를 연결해주고, 작가들끼리 모일 기회를 만들어준다. 서점 주인이 작가의 책을 출판하도록 도와주고, 작가에게 오는 우편물을 대신 받아주거나 서점이 사랑방 구실을 하는 예를 볼 수 있다.
최근의 오프라인 서점들은 대형이든 중소형이든 다 형편이 어렵다. 대형서점은 작은 서점들을 위협하고, 인터넷 서점은 오프라인 서점을 위협하고 있다. 가격이 더 싼 인터넷 서점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점은 고객서비스와 좀 더 특화된 서가로 살아남는 방법밖에 없다. 뉴욕에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책을 진열하고, 보여주고, 커뮤니티를 이루는 작은 서점들이 남아있다. 저자는 그런 서점을 하나씩 순례한다. 서점의 개수가 많은 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예술 전문서점, 요리 전문서점, 여행 전문서점, 추리소설 전문 등등, 뉴욕의 서점들은 각각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뉴욕 서점의 생명력이며 우리가 갖춰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은 여행기의 매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뉴욕의 풍경과 일상이 눈에 어른거린다. 사람들은 이런 글을 읽고 그 지역을 동경하게 된다. 잘 쓰인 소설은 실제 여행보다, 여행가이드보다 그 지역에 대한 감흥을 더 잘 전달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론리 플래닛]같은 여행가이드를 사 보는데 그 도시에 대해 표현하기 힘든 감상적인 면은 여행가이드보다는 소설에 더 잘 나타나 있는 경우가 많다. 뉴욕의 거리는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을 읽으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고,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읽으면 캘리포니아의 살리나스 지역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 그 지역을 가보면 소설에서 읽은 것보다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고 상상한 것들이 현실보다 더 리얼하기 때문일까. - 257p.
이 책은 동네의 작은 서점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서점에 가는 것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과 같다. 서점은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있는 생명처럼 매일 변한다. 누군가 책을 사면, 서가는 새로운 책으로 채워진다.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바뀌기도 하고 아예 서점이 사라지기도 한다. 같은 서점이라도 갈 때마다 다르다. 서점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뉴욕의 서점 순례가 마음에 들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와 함께 서점을 돌아다니며 부러움을 달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그리고 동네 서점에도 자주 다녀볼 만하다.
소설 쓰기에 관한 저자의 생각 :
소설을 쓰기보다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가서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톰슨 스퀘어 파크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소설이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무의식을 골라내는 거라면, 나에게 부족한 건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들의 이야기다. - 284p.
이 책은 차마 버릴 수 없는 책에 대한 사랑고백이다. 다시는 사랑 따위는 안 해, 같은 유행가 가사가 순간이나마 진심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종이책에 대한 나의 사랑도 그런 유행가 가사와 비슷하다. 다시는 사기 싫지만 꾸역꾸역 사 모으게 된다. 책들이 모여 있는 서점에 시간만 나면 드나들게 된다. 책이, 서점이 언젠가는 사라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 작가 서진
(2010-06-06)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 서진 / 한겨레출판, 2007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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