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로 물리적 공간의 평등을 이루다. - 일과 공간의 재창조 ]
오늘날에는 현대적 사무실과 관련해 공간 설계자들이 채택하던 대부분의 규칙들에 의문이 제기되는 중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마치 유리 상자 같은 직사각형 모양의 회의실을 예로 들어보자. 이런 회의실에는 책상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으로, 겨우 비집고 들어갈 공간밖에 없으며 모든 사람이 칠판이나 화면을 보기 위해 정면을 응시한다. 지금은 덜 그렇지만 이런 공간에서는 회사가 요구하는 상호 작용과 협업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유리벽 회의실은 2020년 첫 록다운 이전 시기에나 어울리던 공간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나 록다운 등으로 인해 화상 회의가 유행한 이래 사람들은 물리적인 장소에 모이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화면에 나타나는 방 안의 작은 상자에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어디에서나 이 화면 안에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디오나 오디오로 연결을 시도하다가 형편없는 경험을 하고는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누구나 원활하게 화상 회의에 참여한다.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모두 평등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무실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평준화가 일어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플랫폼에 모여, 똑같은 경험을 얻었다. 디지털 평등(digital equality)이 최초로 실현된 셈이다.
지금은 집에 머무는 사람들도 있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혼합되거나 혼재된 직업 세계를 이루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회의에서 디지털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더욱 까다로운 일이 된다. 사무실의 표준으로 통했던 특색 없는 유리벽 회의실은 디지털 평등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대신 우리는 여러 가지 기술적 해법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물리적 공간의 평등은 실제로 흥미로운 명제다. 우리는 모두 평등해야 하기 때문에 지위, 직무 역할, 서열, 근무 기간 등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공간을 할당받아야 한다. - 141~143P.
일과 공간의 재창조 / 제레미 마이어슨, 필립 로스 / 방영호 /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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