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앞으로 보낸 수많은 편지는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도쿄에서도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러나 답장은 없다. 그 시기 네 앞으로 보낸 수많은 편지는 어떤 운명을 맞았을까? 그 편지들은 과연 너에게 읽히기나 했을까? 아니면 뜯기지도 않은 채 누군가의 손을 거쳐 쓰레기통에 버려졌을까? 영원한 수수께끼다.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계속 편지를 쓴다. 항상 쓰는 만년필과 항상 쓰는 검은색 잉크로. 편지를 쓰는 것 말고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 편지들에 나는 도쿄에서 보낸 나날의 일상을 적는다. 대학 생활에 대해 쓴다. 수업들이 대부분 상상을 초월하게 따분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다 할 관심이 생기지 않는 것에 대해. 밤시간에 아르바이트하는 신주쿠의 작은 레코드 가게에 대해. 그 활기차고 번잡한 동네에 대해. 그리고 네가 없는 생활이 얼마나 시시한지에 대해. 만약 지금 네가 옆에 있다면 여기서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가슴 두근거리는 여러 가지 계획에 대해. 그러나 답장은 없다. 깊은 구덩이 가장자리에 서서 시커먼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을 거는 기분이다. 그래도 네가 그 안에 있다는 건 안다.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너는 그곳에 있다. 나는 알 수 있다.
내게 남겨진 건 네가 예전에 터쿼이즈 블루 잉크로 써서 보내준 두툼한 편지 다발과, 빌린 채로 돌려주지 않은 흰색 거즈 손수건 한 장뿐이다. 나는 그 편지들을 몇 번이고 소숭하게 되풀이해 읽는다. 그리고 손안에서 손수건을 가만히 움켜쥔다.
도쿄에서의 내 생활은 몹시 고독하다. 너와의 접촉을 잃음으로써(그 상실이 일시적인지 영속적인지도 판단할 수 없는 채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기가 힘들어진 것 같다. 예전부터 내 안에 그런 경향이 있긴 했지만 더욱 심해졌다. 너 아닌 누군가와 교류하는 일에서 거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어떤 서클이나 동호회에도 들지 않았고, 친구라 할 만한 상대도 찾지 못했다. 내 의식은 오로지 너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네가 내 안에 남기고 간 기억에 집중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169p. ~ 171p.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홍은주 / 무라카미 하루키
Murakami Har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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