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정신질환이다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소에다 씨는 별달리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새로 '굴러들어온 돌'인 나를 상사로서, 처음부터 저항감 없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맞아들였다. 내겐 무엇보다 고마운 일이었다. 직장 내에서 삐걱이는 인간관계만큼 사람을 소모시키는 건 없으니까.
소에다 씨는 자기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타인에 대한 건전한 호기심은 충분한 모양이라, 시간이 조금 지나 내 존재에 익숙해지자 나의 과거를 이것저것 알고 싶어했다.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왜 내가 사십대 중반까지 결혼하지 않았는지에 가장 큰 흥미가 있는 듯했다. 만약 그 이유가 '적당한 상대를 찾지 못해서'라면 누군가 '적당한 상대'를 찾아 소개해줄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경력이 꽤 긴 독신자로서 지금껏 몇 번이나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다.
“결혼하지 않은 건 마음에 둔 상대가 있어서예요.” 나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같은 질문에 항상 같은 대답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없었군요. 무슨 사정이 있었나요?”
나는 말 대신 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이미 결혼했다든가?”
“그건 모르겠어요.” 나는 말했다. “벌써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고,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도 알 길이 없어서.”
“그래도 그 사람을 좋아해서 지금껏 잊지 못하는 거지요?”
나는 다시 한번 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설명해두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가장 무난했다. 그리고 아주 지어낸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도시를 떠나 이런 산골 마을에 와서 살기로 한 건가요? 그 사람을 잊기 위해서.”
나는 웃고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렇게 로맨틱한 이유는 아닙니다. 도시건 시골이건, 어디에 있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아요. 나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옮겨다닐 뿐이니까.”
“어쨌거나 대단히 멋진 사람이었겠군요?”
“글쎄요. 연애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정신질환이다, 라고 말한 게 누구였더라?”
소에다 씨는 소리 없이 웃고는 안경 브리지를 손으로 가볍게 눌렀다. 그리고 전용 머그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하던 일로 돌아갔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 285p. ~ 284p.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홍은주 / 무라카미 하루키
Murakami Har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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