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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걸으면 나이를 알게 되고 천천히 걸으면 주위를 감상할 수 있다. - 떠남과 만남

by oridosa 2024. 8. 9.

[빠르게 걸으면 나이를 알게 되고 천천히 걸으면 주위를 감상할 수 있다. - 떠남과 만남 ]


땀이 흘러내린다. 몸은 솔직하다. 이렇게 산을 오르면 땀이 앞가슴과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호흡도 가빠져 심장이 뛰는 소리와 호흡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발에 빡빡한 압력이 걸린다. 조금 속도를 내면 압력은 더욱 강해진다. 속도를 내면 자신의 육체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된다. 나이가 생각나고 헉헉거림 속에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천천히 가면 주위를 살펴볼 여유가 생긴다. 바위가 있고, 생강나무가 솜털 같은 노란색 둥근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 한 마리가 이 나무에서 울다가 내 눈길이 거기 머물면 불편하다는 듯 어느새 푸르르 날아 다른 가지로 옮겨 간다. 수량이 적은 산 개울에 물이 흐르고, 그 밑으로 벌써 푸른 기운이 감돈다. 빨리 오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빠르게 걸으면 나이를 알게 되고 천천히 걸으면 주위를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속도를 일단 자동차 같은 기계에게 위임해주면 나이도 경관도 살필 수 없게 된다. 걷는 것보다 훨씬 빨리 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본 것들은 그저 스쳐가는 경관들이다. 폐가 열리는 것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쿵쾅거림도 느낄 수 없다. 또한 천천히 지나며 동백나무의 살갗을 만져볼 수도 없고 불현듯 코끝에 와닿는 달콤한 꽃향기를 맡을 수도 없다. 풍광도 생각도 그저 스크린처럼 지나갈 뿐이다.

차를 타고 갈 때 엉덩이가 약간 배기다는 것은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표시다. 가지고 간 카세트 테이프의 노래도 시들하고, 떠들썩하게 나누던 대화도 끝이 나면 엉덩이가 배기기 시작한다. 차 안에서 심심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자거나 먹는 것이다. 자거나 먹는 것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살을 찌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먹을수록 아무데나 살이 붙고 더 많은 트림과 더 많은 방귀를 뀌게 된다. 32 p. 

떠남과 만남 / 구본형 / 생각의 나무

떠남과 만남 / 구본형 /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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