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과 놀이를 창조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화적 결핍은 미래가 없다 - 떠남과 만남 ]
시류(時流)라는 것이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시류에 편승한다. 스스로 자기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옳다고 말하지만, 시류를 어기기 어려운 것이 또한 인간이다. 휴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히 쉬지 못한다. 늘 가장 하고 싶은 것이 푹 좀 쉬고 싶은 것인데 그러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휴식을 창조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휴식을 게으름과 소비로 인식한다. 한 개인이 이러한 사회적 시류에 반하여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회의 전반적 수준 상승이 중요한 것이고, 지도층의 모범이 절실한 것이다.
서양인들은 휴가가 길다. 한번 휴가를 내면 보통 몇 주일씩 놀고 쉰다. 그들은 고부가가치를 가진 경제의 톱니바퀴고 우리는 저부가가치 경제의 톱니바퀴다. 그들의 톱니바퀴가 천천히 돌아도 우리의 톱니바퀴는 허벌나게 빨리 돈다. 이것이 경제 구조의 차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는 사회는 쉬어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부가가치가 낮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몸이 고단해야 겨우 먹고살 수 있다. 그들에게는 한 달쯤의 휴가가 일상적인데 우리에게는 이례적인 것이다. 이것처럼 명쾌한 차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구조의 차이만은 아니다. 바로 일상을 살아가는 문화적 차이기도 하다. 만일 한 달쯤 쉬다 왔는데도 회사가 자기를 아쉬워하지 않고 그런대로 잘 돌아가고 있으면 불안해지는 것이 우리다. 다른 사람이 ‘저 사람은 없어도 되는 사람인가보다’라고 인식할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휴가를 갔다가도 사흘이면 돌아오고, 길어도 열흘 이내에 출근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자아를 스스로 감시하는 정도가 지나치면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진다. 사회가 집단적으로 이러한 질병을 앓고 있을 때도 있다. 이때 그 사회는 구성원 모두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휴식과 놀이를 창조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화적 결핍은 ‘기계적 번잡’만을 양성할 뿐이다. 먹고살기는 하겠지만 미래가 없다. - 56p.
떠남과 만남 / 구본형 /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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