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쓰지 않은 난로가 온기를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그 방으로 집무실(이라 해도 될 것이다)을 옮긴 후 가장 먼저 한 작업은 장작을 날라오는 것이었다. 장작은 정원 창고에 쌓여 있었다. 창고에 있던 대바구니에 장작을 담아 반지하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난로에 몇 개를 던져넣고, 뭉친 신문지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급기구 손잡이를 돌려 공기가 들어오는 양을 조절했다. 장작은 잘 말랐는지 쉽게 불이 붙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난로가 온기를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난로 앞에 앉아 오렌지색 불꽃이 가만히 흔들리고 쌓인 장작이 차츰 형상을 바꿔나가는 광경을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았다. 정사각형 반지하 방은 몹시 조용했다. 소리라 할 만한 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때때로 난로 안에서 무언가가 탁탁 터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 말고는 오직 침묵뿐이다. 네 개의 말 없는 벽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윽고 난로 전체가 충분히 데워지지 주전자에 물을 받아 위에 올렸다. 잠시 후 주전자가 달그락거리며 하얀 김을 세차게 토해냈고, 나는 그 물로 홍차를 우렸다. 같은 찻잎인데도 난로로 물을 끓여 우린 홍차는 한결 향긋하게 느껴졌다. - 317p.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홍은주 / 무라카미 하루키
Murakami Har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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