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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생의 아주 이른 단계에서 최고의 상대를 만났던 겁니다.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by oridosa 2024. 8. 14.

[당신은 인생의 아주 이른 단계에서 최고의 상대를 만났던 겁니다.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누군가를 그 소녀만큼 진심으로 좋아하고 애틋하게 느낀 적이 있습니까?” 

“살면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났고,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제법 진지하게 사귀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소녀만큼 누군가를 열망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릴 것 같고, 대낮에 깊은 꿈을 꾸는 것 같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그런 순수한 심정을 품은 적은요. 결국 저는 그 백 퍼센트의 마음이 다시 한번 찾아와주기를 지금껏 기다렸나 봅니다. 혹은 과거에 제게 그 마음을 가져다주었던, 그 사람을.”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아내를 잃은 뒤, 연이 닿아 몇 명의 여자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지는 않고 몇 명 정도요. 후처를 맞으라며 맞선을 권하는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아내를 잃었을 때 저는 아직 사십 대였고, 오랜 집안의 대를 잇는 아들이거니와, 이 작은 마을에서 나름 사회적 지위가 있었으니 주위에선 새 아내를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들 생각했답니다. 그리고 제게 다가오는 여자분도 없지는 않았고요.

하지만 아내에 대한 사랑에 필적할 만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상대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용모가 뛰어난 분도, 인품이 훌륭한 분도, 죽은 아내가 그랬던 것만큼 제 마음을 떨리게 하진 못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이런 얘깁니다. 티없이 순수한 사랑을 한번 맛본 사람은, 말하자면 마음의 일부가 뜨거운 빛에 노출된 셈입니다. 타버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더욱이 그 사랑이 어떤 이유로 도중에 뚝 끊겨버린 경우라면요. 그런 사랑은 본인에게 둘도 없는 행복인 동시에, 어찌 보면 성가신 저주이기도 합니다. 제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하시겠습니까? 

나 자신에게 백 퍼센트인가 아닌가, 중요한 건 그뿐입니다. 당신이 열여섯에서 열일곱 살 때 상대에게 품었던 사랑은 실로 순수했으며 백 퍼센트의 마음이었지요. 당신은 인생의 아주 이른 단계에서 최고의 상대를 만났던 겁니다. 만나버렸다, 라고 해야 할까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홍은주 / 무라카미 하루키
Murakami Haruki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홍은주 /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홍은주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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