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가 그 변천의 기록이듯, 인생은 개인의 변천사다. - 떠남과 만남 ]
이날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는 대웅전 옆 요사채 돌계단에 기대어 서 있었다. 대웅전 앞마당에 웬 노인이 서 있는데 멀리서도 연로해 보였다. 어깨가 올라가고 목이 앞으로 굽었는데, 지팡이를 짚었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 곧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내가 공사바위 위로 올라갈 때도 거기 그렇게 서 있는 것을 무심코 보았는데 아직도 그렇게 서 있었다. 한참을 더 그렇게 서 있더니 뒤로 돌아 천천히 걸어 나왔다. 무릎이 잘 구부려지지 않을 만큼 연로하여 지팡이에 의지해 천천히 걸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주위에 대동하는 사람 하나 없이 노인 혼자 그렇게 한참이나 걸어 나오더니 다시 돌아서 대웅전을 향해 섰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대웅전 앞으로 걸어갔다. 스님 한 분이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법복을 차려입고 부처를 향해 목탁을 치며 독경을 외는 스님의 뒷모습이 여자 같다고 느껴졌다. 아, 그렇구나. 이 절이 비구니들의 도량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구나. 아무것도 없이 폐허가 되어 있던 절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은 모두 비구니들의 정성이었다. 법복을 입고 머리를 깎았지만 뒤에서 보아도 그 앉아 있는 모습이 남자와는 사뭇 다르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 자태가 다르다.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느껴진다. 느낌이 감각을 넘어서는 대목이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다시 매표소 앞에서 잠시 기다리고 서 있는데 작은 용달차 하나가 앞에 섰다. 운주사 대웅전에서 보았던 그 노인이 내렸다. 앞에서 자세히 보니 참으로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넥타이에 정장을 하고 그 위에 코트를 입고 있었다.
노인에게 여기는 어떤 일로 오셨느냐고 여쭤보았다. 눈가는 노인 특유의 짓무름으로 붉어져 있었지만 눈동자만은 아직 초점이 또렷했다. 그는 주지 스님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버스가 와서 내가 곁에서 부축하자, 재바르게 버스에 올라 가장 앞자리에 편안히 앉았다.
저렇게 정장을 하고 이곳을 찾은 이유가 무엇일까? 돌아가신 후에 운주사에 위패를 모시기로 했을까? 그래서 이 봄에 이 절을 찾아와 대웅전 앞에 그렇게 하염없이 서 있었을까? 이 봄이 마지막 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면 이 절에 딸아이가 출가해 있어 그 딸을 마지막으로 보러 왔을까? 대웅전 안에서 노인만큼이나 정숙하게 법복을 차려입고 목탁을 두드리던 그 스님이 이 노인의 딸이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 둘은 오늘의 감회가 어떠했을까?
나이가 들면 몸이 가벼워진다. 뼛속의 진이 다 빠져나와 그렇게 가벼워지는 모양이다. 그 가벼움은 멀리서도 보인다. 바람에 옷자락이 날리는 것만 보아도 몸이 날아갈 만큼 가볍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루하루가 아깝기 그지없는 나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 노인에게 운주사를 다녀온 이날만큼 홀가분하고 또 의미 있는 날이 있었겠는가. 얼마나 벼르고 별러서 왔을 것인가.
인생만한 변화의 장은 없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노인이 되어 이곳에 있다. 노인에게는 어른인 아이가 있고, 어른에게는 아이인 아이가 있다. 인류의 역사가 그 변천의 기록이듯, 인생은 개인의 변천사다. 굽이굽이 후회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숨막히는 즐거움이 있고, 너무나 부끄러워 잊고 싶은 순간이 있다. 변화가 두렵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 수 있겠는가? - 58p. ~ 61p.
떠남과 만남 / 구본형 /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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