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얼마만큼 가져야 넉넉할까? - 떠남과 만남 ]
중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셨다.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어머니 역할을 대신 큰누나가 하고 있었다. 누나는 유리컵 세 잔에 사이다를 담아 내왔다. 유리컵들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누나는 제일 깨끗한 유리컵을 선생님께 드렸다. 모양이 다른 유리컵 세 개만큼 우리집의 가난을 명료하게 보여준 것이 없었다. 쟁반 위에 놓인 크기도 모양도 각기 다른 유리컵을 보며 나는 왜 그렇게 부끄러웠던지 모르겠다. 그보다 훨씬 더 곤란한 일들도 많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었는데 그때만큼은 같은 유리컵 세 개를 내놓을 만큼의 부유함이 참으로 부러웠다.
돈을 얼마만큼 가져야 넉넉할까? 사고 싶은 것을 하나도 살 수 없으면 가난한 것이다. 원하는 것이 두 개인데 그중에서 하나밖에 살 수 없는 경우는 그럭저럭 사는 것이다. 하나를 사면 다른 것을 살 수 없는 선택적 소비는 중산층의 전형적 모습이다. 청바지도 사고 싶고 빨간 치마도 사고 싶은데,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살 수 있으면 잘사는 것이다. 돈이 그보다 더 많으면 불행해진다. 가지고 있는 많은 돈으로 더 많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머리는 깨지고 마음은 평화를 찾지 못한다. 그들은 돈으로 무엇이든 사려고 한다. 사랑, 우정, 충성, 하다못해 타인의 복종마저도 사려고 한다. 그는 많은 돈을 세다 간다. 평생 돈을 세다 가지만 그저 셀 뿐이다. 한 푼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부자보다는 그 아들딸들이 훨씬 더 행복하다. 부자의 아들이나 딸이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부자는 되지 말 일이다. 부자는 죽어 혼이 아직 육체를 떠나기도 전에 즐거움에 지친 자식들끼리 돈을 서로 더 가지려고 쌈박질을 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갑자기 대박이 터지는 행운을 거머쥔 사람들, 어마어마한 액수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대체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혼이다. 더 젊고 섹시한 여자를 찾아가거나, 더 힘센 남자를 찾아간다. 통계에 따르면 그들의 말로는 좋지 않다고 한다. 복권에 당첨되기 전보다 훨씬 더 불행해진 경우가 태반이다. 갖고 싶은 바지 한 벌과 치마 한 벌을 한꺼번에 살 수 있으면 그대는 이미 위험하리만큼 부유한 것이다. 더이상 바라지 마라. - 249p. ~ 251p.
떠남과 만남 / 구본형 /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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