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신주의. 비루하고 천박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 솔스케이프
기능이 건축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모더니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말이 시작이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그의 선언은 기계 산업이 등장한 그 시대를 대변하는 말이었고 기계 미학은 모든 건축가를 매료시킨 과제였다. 물론 기능이라는 단어가 건축에 이때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미 로마 시대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견고함과 유용함 그리고 아름다움, 세 가지를 건축의 기본적 요소라고 말한 바 있고, 이는 서양의 건축론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형태가 기능을 따른다는 이야기는 기능이 어떤 무엇에도 우선한다는 말이었으니, 이는 2천 년간 서양 건축을 지탱한 기본 요소의 삼각 균형을 깨뜨리는 반역이었다.
대량 생산, 신속 처리, 효율 관리, 표준 치수 같은 말은 모든 규범의 척도가 되어 기능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등장한 기능적 건축, 기능적 도시, 기능적 사회, 매몰차기까지 한 이 기능의 시대가 흥왕하며 지속되는 동안 우리는 수도 없는 비극을 목격해야 했다. 사용자와 노동자 간, 부자와 빈자 간, 세대 간, 인종 간, 종파 간, 이념 간, 이성 간, 심지어 이웃 간까지, 갈등과 대립은 미증유 상태로 치닫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대국이 되어 기적적 부유함을 자랑하면서도 하루에 마흔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절망의 사회가 되었다.
어쩌면, 이 절망이 오히려 무감각해진 사회, 마치 어떤 혼령이 상황을 지배하는 듯했다. 바로 물신(Mammon)이었다. 물신주의. 지난 세기 우리가 내세운 모든 가치 옆에 도사리며 세상을 조종한 이 혼령은 특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내걸고, 새 역사 창조라는 궤변을 들이대었다. 우리는 오래된 아름다운 가치를 뒤엎었고, 급기야 못내 비루하고 천박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닐까. - 14p.
솔스케이프 / 승효상 / 한밤의빛
Soul Scape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와 벌]의 폭넓은 해석, 사상과 돈 -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 (0) | 2025.01.15 |
---|---|
황제의 특사가 달려와 숨넘어가는 소리로 ‘형 집행 정지!’. 도스토옙스키의 일화 (0) | 2025.01.14 |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 3편 (0) | 2025.01.11 |
도스토옙스키는 언제나 돈이 부족했다. -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 (0) | 2025.01.10 |
좋은 건축가는 좋은 건축주가 만드는 법이다 - 솔스케이프 (0) | 2025.0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