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특사가 달려와 숨넘어가는 소리로 ‘형 집행 정지!’. 도스토옙스키의 일화
도스토옙스키의 삶에서 1849년 말부터 1859년 말까지 약 11년간의 세월은 일종의 공백기라 할 수 있다. 그는 반정부 단체에 가담하여 사형선고를 받은 후 형 집행 직전에 특사를 받아 시베리아의 옴스크에서 4년간 유형 생활을 한다. 저격수들이 죽 늘어선 사형수들을 향해 총을 발사하기 일보 직전에 황제의 특사가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말을 타고 달려와 숨넘어가는 소리로 ‘형 집행 정지!’를 외치는 드라마틱한 장면은 도스토옙스키의 전기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부분이니 이 책에서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형기가 만료된 그는 1854년 세미팔란스크의 전선에 사병으로 편입되어 또 5년간 군 생활을 한 후 1859년 12월에야 비로소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할 수 있게 된다.
4년간의 죄수 생활은 아이러니하게도 도스토옙스키의 전 생애 동안 상대적으로 돈에서 자유로운 유일한 시기였다. 선불을 받을 일도 없고 돈 쓸 곳도 없고 쓸 돈도 없었다. 돈에 쫓기지 않는 삶을 영위하면서 우리의 낭비가는 이번에는 돈에 관해 사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이 바로 “돈은 주조된 자유다”라는 유명한 진술이다.
그러나 이토록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음에도 미래의 위대한 작가는 사병으로 편입되어 약간의 수입이 생기기 무섭게 다시 낭비하는 습관으로 돌아가버린다. 물론 얼마 안 되는 돈이고 그것을 꼬깃꼬깃 모아두었다고 해서 큰돈이 될 리도 없었겠지만, 사병 도스토옙스키는 좌우간 얼마 안 되는 돈이나마 보는 대로 써댔다. 사실 낭비는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다. - 105p.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 / 석영중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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