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그들은 시계를, 삶을, 시간을 저당 잡힌다. -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
도끼에 맞아 비참하게 죽는 노파의 직업이 다름 아닌 전당포 주인이라는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조금은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경우 작가의 삶과 소설, 문학과 현실은 매우 긴밀하고도 절묘하게 뒤얽혀 있다.
도스토옙스키와 전당포 주인의 관계는 길고도 참혹한 것이었다. 그는 너무도 자주 전당포 문지방을 넘어야 했고 너무도 많은 물건을 저당 잡히며 살았다. 특히 도박장에서는 거의 전당포에 출근을 하다시피하며 살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전당포 주인의 인색함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독일인들이 얼마나 비열한지 당신은 상상하지 못할 거요. 그 시계점 주인은 가느다란 줄이 달린 나의 시계를 보더니 고작 65굴덴, 즉 43탈러, 다시 말해서 거의 두 배 반이나 더 적은 돈을 내주는 것이었소.”
도박으로 가진 돈을 다 탕진하여 편지로 돈을 보내달라고 읍소하는 마당에, 그래도 전당포 주인의 인색함을 국민성과 결부해서 개탄할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튼 [죄와 벌]에 그려지는 사악한 전당포 노파는 그동안 그가 이 세상 모든 전당포 주인에게 품었던 악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죄와 벌]의 모든 인물은 어떤 식으로든 전당포와 연관된다. 그들은 시계를 저당 잡히고, 삶을 저당 잡히고, 시간을 저당 잡힌다. 전당포는 인물들의 삶을 옥죄고 갉아먹고 마침내 인물들을 비극적인 파멸로 이끌어가는 무자비한 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 188p.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 / 석영중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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