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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 물신의 시대에 대항 - 솔스케이프 / 승효상

by oridosa 2025. 1. 19.

'빈자의 미학' 물신의 시대에 대항 - 솔스케이프 / 승효상


나는 일찍이 이 물신주의에 내 건축으로 항거하기로 하였다. '빈자의 미학'. 김수근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그 문하에서 15년의 수련을 끝내고 독립해야 했던 1989년, 앞으로 무슨 가치를 들고 내 건축을 해야 하는지, 심지어 나 스스로 누구인지조차 모를 때, 온갖 방황을 거치며 치른 악전고투 끝에 내가 붙잡은 말이었다. 언어는 내가 말하는 게 아니라, 간절히 기다린 자에게 오는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1992년 12월 열린 4.3 그룹 전시회에서 물신의 시대에 대항하겠다며 내건 이 말은, 그 이후 내 건축만이 아니라 내 삶까지 채우는 족쇄였다. 선언이 된 듯한 이 언어에 격려도 있었지만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하지만 비아냥거림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하여, 이 말을 제목으로 한 책까지 내면서 내 건축의 근본을 두텁게 했다. 

1996년 초간한 작은 책 [빈자의 미학]에 이를 실천하는 네 가지 건축적 과제를 열거했는데, 도시, 공간, 기능, 형태다. 전체를 통해 건축이 지녀야 할 최고의 가치는 공공성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건축은 도시의 부분이며, 그 자체가 작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간은 수많은 삶의 형태를 상정하며 수용하도록 한 다음, 그 모두를 비워서 거주자가 주체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자고 썼다. 또한 ’기능적‘이라는 단어를 의심하고 오히려 반기능의 즐거움을 역설했다. 건축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강조하고, 우리 삶의 배경이 되도록 단순하게 하고 침묵하자고 했다. 30년이 넘는 지금까지 건축을 통해 네 가지 과제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언어들이 다가왔다. 어반보이드, 불확정적 비움, 지혜의 도시, 현대의 유적, 문화풍경 등 모두 빈자의 미학이 갖는 의미를 넓히고 깊게 하였다. 적어도 나에게 빈자의 미학은 진리였으며, 이 속에 있는 자유하였다. 이 자유함으로 건축의 현장에 거주하는 동안 새로운 과제 두 가지가 나타나게 된다. - 15p.

하나는 건축이 가진 기억 장치로서의 역할이다. 특정한 땅을 점거하고 세워지는 건축은 마땅히 그 땅이 지닌 오랜 기억 위에 새로운 삶의 기록을 덧대는 일이며, 건축 자체 또한 세월 속에 풍화되어 그 터에 세월의 무늬를 새기는 역사적 일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터에 새긴 무늬가 즉 터무니이니, 이는 우리의 존재 근거여서 선조의 언어가 너무도 적확하였다. 나는 한자 말로 바꾸어 ’지문(地‘文)이라 했고 영어로는 ’Landscript’라고 단어를 만들었는데, 위키피디아에 내가 만든 단어로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지문에 대한 글과 이를 실천한 건축을 엮어 책으로도 출판한 바 있다. - 16p.

그리고 마지막 과제로 붙든 게 바로 영성이다. 그런데, 이 단어를 내세우는 일이 내내 망설여진 것도 사실이다. 나이 들어 생명이니 영성이니 하며, 이를 생애 마지막 과업인 것처럼 붙잡고 달통한 도사가 된 듯 혼자서 내뱉는 행적을 몇 사람에게서 보며 실망한 적이 있는 터라 나도 그런 부류로 여겨질까 탐탁지 않았다. 또한 다분히 종교적 분위기까지 풍기는 일도 일방적인 것 같아 거리꼈다. 그러나 어느 날, 이런 마음가짐이 우리 사회에서 영성을 일부러 멀리한 까닭인 것을, 물신의 수작으로 우리 삶에서 영성을 쫓아내길 오래 한 까닭인 것을, 그래서 애써 불화하여 버린 까닭이라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그렇다. 영성은 본디 우리의 일상과 분리될 과제가 아니었다.

우리 선조는 늘 영성이 충만한 삶을 살았다. 집 안 거의 모든 곳에 영성이 가득했던 것을 보면 틀림없이 그렇다. 우선 집터에는 터줏대감이 산다고 여겨 집을 짓거나 터의 형상을 바꿀 때면 제사를 지냈다. 집의 마루에는 성주신이 살았으며 부엌에는 조왕신, 심지어 화장실에도 측신이 산다고 여겼다. 또 문마다 문신이 산다고 믿어 문을 넘을 때 조심했다. 이들이 잡신이라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우리를 다스린다고 여기며 항상 삼가며 살았다. 마을마다 입구에는 으레 당산나무가, 그 아래에는 신당이 있어 오가며 늘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으니, 우리들 공동체도 그러했다. 이뿐만 아니라 큰 집에서는 사당까지 두어 죽은 자와 같이 살기도 했다. 죽음과 신들을 목격하며 사는 게 일상이어서 우리 선조의 삶 자체가 종교였다. 자계(自戒)하며 신독(愼獨)하고 청빈(淸貧)으로 독락(獨樂)하는 선비의 삶, 조선 500년을 지탱하며 아름다운 문화를 일구어내는 바탕이었다. 그런데 결국, 이 모두를 물신 하나가 쫓아내고 만 것이다. - 17p. 

솔스케이프 / 승효상 / 한밤의빛
Soul Scape

솔스케이프 / 승효상. Soul Scape
솔스케이프 / 승효상. Soul 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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