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란 대체 얼마나 있을까? - 끝없는 바닥 / 이케이도 준
상점가 중간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구립 도서관 앞을 지나 길 끝까지 간 곳에 내가 사는 맨션이 있다. 역에서는 도로 7분. 15분쯤 걸을 마음이 있으면 요요기우에하라역으로도 갈 수 있는 위치다.
내가 이 맨션을 산 이유는 예전에 여기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아직 건강했던 시절이라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몇 년을 거기서 보냈다. 어머니의 병을 안 것은 아버지가 전근을 가게 되어 삿포로에 이사한 뒤였다.
인생에서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란 대체 얼마나 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아버지는 늘 쓸쓸해 보였다. 그런 아버지가 급사했을 때 현세에서는 오래 함께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분명 다시 맺어진 거라고 나 자신을 타일렀다. 누가 뭐라고 하든 부모 자식 셋이서 행복하게 살던 그 시절 기억은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다. 여기로 돌아온 것은 그 기억을 조금이라도 소중히 하고 싶어서였다. 어린 내 손을 잡고 동요를 부르면서 걷던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나 아버지의 다정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신축 매매로 나온 이 맨션을 발견하고 시부야로 되돌아온 것은 아버지가 죽고 얼마 지나서였다. 맨션 구입 자금은 외국계 기업의 현직 임원이었던 아버지의 퇴직금과 금융자산으로 충당했다. 남은 돈으로 묘소를 사고 상속세는 보험금으로 지불했다.
이사를 왔을 때 우리가 살던 집은 이미 없어지고 새로 생긴 3층 건물은 어디 회사 사무소가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여기로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내 고향이자 원점이기 때문이다. - 94p.
끝없는 바닥 / 이케이도 준 / 심정명 / 소미미디어
Hatsuru sokonaki / Jun Ikeido
果つる底な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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