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 왕복서간(往復書簡) :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15년간 묻어 둔 진실
공연 : 왕복서간(往復書簡) :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관람 일시 : 2019년 11월 10일
공연 팜플릿이 감성적이어서 마음에 든다.
15년 전 사건 :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같이 놀던 친구 준이치, 가즈키, 야스타카. 어느 창고에 가즈키와 마리코가 갇히고, 창고에 불이 난다. 준이치가 마리코를 구출하지만 가즈키는 창고 안에서 죽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야스타카가 투신자살한다.
마리코는 그 당시의 충격으로 사고의 자세한 내막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당시 마리코를 구한 준이치는 마리코에게 더 이상 그 사고를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연인이 된 두 사람. 어느 날 준이치는 2년간 오지 섬나라로 자원 봉사를 떠나게 되고 둘은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마리코의 편지가 준이치에게 전달되고, 준이치는 답장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마리코는 하나 둘 사고의 기억을 되찾으며 사건의 내막을 알아간다. 연인인 두 사람은 과거의 비밀을 알고 나서도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문득, ‘사랑하는 것은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것’ 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이 연극의 원작은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소설이다. 미나토 가나에 작품의 특징은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데 있다. 그래서 초반부는 밋밋한 감이 있지만 후반부에는 감정과 분위기를 최고로 끌어올려 마지막에 무너뜨린다.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이 등장하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 되겠다.
마리코는 본인이 생각하는 불의에 대응하려는 성격의 소유자다. 과거와 현재, 마리코는 몇몇 주변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들어주고 관여한다.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우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그에게도 정의로 받아들여질지, 그것을 고민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준이치는 그런 마리코에게 자신이 (과거의 사건으로) 비겁한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한다.
“5 X 0 = 0,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많이 더해봐야 아무것도 아니다.”
편지글로만 이어지는 서정적인 내용이지만, 편지가 오고갈수록 사건의 내막을 한 겹씩 벗겨내며 반전의 반전이 일어난다. 구성이 탄탄하다. 원작과 배우의 힘이다. 마리코가 사고 당시의 기억을 잃고, 다시 기억을 되찾는 것은 매우 극적이다.
다양한 조명효과로 시간과 공간을 잘 구현하고 있다. 한 무대에 현재와 과거, 멀리 떨어져있는 준이치와 마리코를 잘 표현하고 있다. 무대 구성이 좋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이 연기가 원작의 맛을 잘 살려낸다. 점점 격해지는 감정, 분노와 안타까움을 잘 표현했다.
오늘의 배우 : 준이치(에녹), 마리코(강지혜), 어린 준이치(황성훈), 어린 마리코(송영미), 가즈키(조원석), 야스타카(이진우)
* [왕복서간]에 세 편의 글이 있다. 연극은 그 중 하나다. 다른 두 이야기도 연극으로 만들면 좋겠다. 그리고 공연을 보신 분들은 소설도 읽어보시라 권한다.
* 공연장 밖 대기하는 곳에는 공연 영상물을 TV를 통해 일부 보여준다. 기다리면서 공연을 기대하게 한다.
* 공연장에서 배우의 대사가 스피커로 전달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의문이 든다. 육성이면 충분한 공간인데, 스피커 음성과 배우들의 동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공연장 시설은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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