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조사는 고고학의 첫걸음이다. - 고고학
고고학자의 발굴을 ‘수술 자국이 작을수록 좋은 외과수술’에 비유하면 설명하기 편하다. 발굴도 수술처럼 규모가 크면 클수록 비용도 많이 들고 유적의 파괴도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소한의 노력으로 땅을 파서 유물을 조사하는 게 이상적이다. 고고학 발굴 조사의 첫 단계는 마치 의사가 환자를 청진기로 진찰하듯 땅을 파지 않고 땅속의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표조사(surface survey)’라고 한다. 일반인은 땅을 파지 않은 채 유적이 어디에 있고 상태가 어떨 것이라는 고고학자의 진단에 대단한 비결이 있을까 기대한다. 사실 그런 것은 없다. 다만 지표조사를 반복하면서 어떤 지형에 유적이 있지 않을까 예측한 것에 불과하다.
지표조사는 고고학의 첫걸음이다. 준비 과정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유적이 있을 법한 지역을 다니면서 땅 위에 있는 유적의 징후를 찾는다. 그것은 주로 토기 편(조각)이다. 땅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동한다. 지하수나 바람으로 흙은 이리저리 쌓인다. 또 동물이 파놓은 땅, 식물 뿌리 등으로 땅속의 유물은 계속 파괴되고, 그 흔적이 땅 위에 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활동으로 땅이 파헤쳐지는 경우가 많다. 고고학자는 길을 만들거나 건물을 지으면서 땅을 깎아놓은 곳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데, 이런 경우는 굳이 땅을 파지 않아도 땅속의 유적을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표조사에는 전체 유적의 범위를 미리 파악해서 그 지역에서 더 이상의 건설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도 있다.
지표조사의 매력은 바로 땅을 파괴하지 않고 유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51p).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 강인욱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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