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발달로 기존의 문명에 대한 통설이 무너졌다. - 고고학
전쟁이 준 뜻밖의 선물인 방사성탄소연대로 고고학계는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그전까지는 영국의 스톤헨지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했다. 방사성탄소연대를 몰랐기 때문에 막연하게 우월한 고대 문명에서 변방의 영국으로 전파되었다고 본 것이다. 사실 4대 문명에서 세계의 모든 문명이 확산되었다고 하는 과거의 주장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 나오기 전의 견해이다. 절대연대를 알 수 없으니 크고 훌륭한 피라미드 같은 것에서 돌을 쪼개서 만든 변방의 고인돌이 생겨났다고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방사성탄소연대를 측정해보니 변방의 거석문화가 훨씬 연대가 오래되었음이 밝혀졌고, 4대 문명 기원론은 곧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1960년대에 일본의 조몬시대의 토기를 측정해보니 무려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1만 2,000년이 나온 적이 있다. 처음에 후쿠이 동굴에서 측정한 연대가 1만 2,000년을 상회하는 연대가 나오자 고고학자들은 일제히 그 측정 방법에 불신을 보냈다. 심지어 일본에 떨어진 두 차례의 핵폭탄으로 일본 대기에 방사성물질의 비율이 높아져 방사성탄소연대에 혼란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학자도 있었다. 거듭되는 측정과 발굴 방법의 개량으로 토기가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같이 나오는 예가 다수 확인되었다. 이후 1980년대에 러시아 연해주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지금은 중국에서 2만 년 전의 토기가 나왔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나아가 튀르키예의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유적은 구석기시대 후기에 이미 거대한 신전을 만들었다는 점도 증명한다. 이렇게 기존의 4대 문명이 아니라 변방으로 치부되었던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가 일찍이 발달했음이 밝혀진 것은 전적으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도입 덕분이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 각지에서 밝혀진 사실들로 고고학계에서도 기존의 문명에 대한 통설이 무너지고 있다. 20세기에 이야기하던 ‘4대 문명의 위대한 발명품이 각지로 전파되면서 세계가 계몽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결코 거대한 기념물과 위대한 왕이 선도하지 않았으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었음이 수많은 증거로 밝혀지고 있다. 문명은 결코 위대한 업적도 아니고,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과정도 아니었다. 각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구사했고, 그 와중에서 그들이 선택했던 수많은 과정이 서로의 작용으로 후대에서 말하는 문명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중심과 변방으로만 인식되었던 기존의 선사시대에 대한 인식은 바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개발로 무너지게 되었다. - 91p. ~ 93p.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 강인욱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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