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형태로 만든 것은 남아도, 사람 그 자체는 남지 않는다. - 가라앉는 프랜시스
개척 도중에 마을에 큰 화재가 났을 때, 불은 집과 나무를 태웠을 뿐 아니라, 밭에 심겨 있던 감자까지도 구운 감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대로 버리는 것보다 낫겠지 싶어 먹어본 감자가 너무 맛있어서 놀랐던 이야기, 진화가 되고 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을 때, 누군가가 누구에게라도 할 것 없이 말했다. (이제 큰 나무를 벌채하는 수고는 많이 줄겠지.) 게이코 앞에서 옛날이야기를 하는 노인들의 눈동자는 유리창에서 들어오는 석양빛을 비스듬하게 받아 호박색으로 빛났다. 아름다운 것이 이런 곳에도 있다. 게이코는 허를 찔린 것 같아 물끄러미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봤다.
우편배달이 익숙해질 때쯤, 이야기를 들려주던 노인들의 반 이상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이 든 사람들도 이제는 십 년도 전에 와서 이야기를 듣던 게이코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우편배달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속달이나 등기를 건넬 때조차도 얼굴을 제대로 보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 이름을 대고 인사했어도 기억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게이코는 생각한다. 사람이 형태로 만든 것은 남아도, 사람 그 자체는 남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었고, 손과 발, 몸을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었는지. 형태로 남지 않는 것은 다 사라져버린다.
그것은 한 방울도 같은 물이 포함되지 않았는데도, 같은 흐름으로만 보이는 강의 흐름과 비슷하다. 격류에 실려 온 커다란 바위나 큰 나무줄기처럼, 거기에 멈춰 서서 형태를 남기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좀처럼 흘러오지 않는다. 그렇게 친숙하고 친했던, 못 알아볼 리도, 잊을 리도 없는 몸짓과 목소리와 냄새는 망망한 시간 앞에서 여지없이 패배한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이윽고 잊히고 사라진다.
안치나이 마을은 벌써 가을이었다. 빨강, 노랑 등으로 변한 잎 냄새, 이른 아침에 보는, 내뱉는 숨결의 하얀색은 사는 것보다 죽음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한다. 겨울로 향하는 가을이 게이코는 좋았다. - 22p. ~ 23p.
좋은 연주라면 트랜지스터라디오로도 제대로 들리고, 그건 그것대로 괜찮죠. 그렇지만, 음악이 아닌 음은 달라요. 음은 무엇으로 듣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거든요. 이것은 듣는 사람의 감각의 수준점 같은 것을 백팔십 도 바꿀 만큼 다릅니다. - 38p.
가라앉는 프랜시스 / 마쓰이에 마사시, 松家 仁之 / 김춘미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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