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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러브레터 ] 여자는, 알았다. 남자의 충격적인 정체를.

by oridosa 2019. 12. 6.

[기묘한 러브레터 ] 여자는, 알았다. 남자의 충격적인 정체를.

 

기묘한 러브레터 / 야도노 카호루 / 김소연 / 다산책방

기묘한 러브레터 / 야도노 카호루
기묘한 러브레터

 

 

 이 소설은 30년 전 대학 연극부 선후배로 알게 된 남녀의 30년 후 이야기다. 둘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결혼식 당일 여자(미호코)가 사라진다. 30년이 지나서, 남자(미즈타니)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자에게 소식을 전한다. 단서는 여자의 이름 하나뿐. 그 사람이 맞는지 댓글과 프로필 등을 살펴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편지를 보낸다.

     당신이 왜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춘 건지, 이제 와서 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론 알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반대로 알기가 무섭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이유를 알고 싶다!’고 강렬하게 원했던 적도 있지만, 30년이라는 세월은 그 마음도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아마 당신에게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와 사정이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게 제가 알아서 좋을 일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알아도 의미는 없지요. - 104p.

남자는 결혼 당일의 충격으로 오랫동안 고생한다. 게다가 암까지 걸려 병원 치료도 받는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30년 전, 대학 연극부 시설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소설의 초, 중반까지는 지극한 순애보다. 오고 가는 편지 속에서 남자는 30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궁금해한다. 점점 뒤로 갈수록 남자가 여자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 이상으로 원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남자의 마음속에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제가 정말로 꿈꾸었던 것은 당신과의 삶입니다. 만일 당신과 결혼했다면 지금쯤은 당신과, 그리고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사고 있었겠지요. 어쩌면 손자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만일 당신과 결혼했다면 전혀 다른 인생을 걷고 있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적어도 지금 같은 처지는 되지 않았을 거예요. - 175p.

연극부 선후배에서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기까지. 남자가 보는 사건과 여자가 보는 사건이 조금 다르다. 서로 기억하는 모습도 다르다. 인간관계의 모든 오해는 이렇게 보는 시각,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어쨌든 결혼 당일 남자는 결혼식장에서 여자를 기다리고 여자는 오지 않는다. 30년이 흘렀고 그동안 남자의 인생은 비참해졌다. 여자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남자는 그것을 따지려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 서운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원한도 무뎌지는 법. 그렇게 좋게 훗날을 이어가는 것이지만, 남자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30년 전에 여자는 남자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남자는 자신의 본 모습을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남자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파렴치한. 30년 후에 여자는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화를 낸다.  

     전에 미즈타니 씨는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하셨죠. 범죄에는 거기에 이르게 되는 이유가 있다고요. 미즈타니 씨는 자신의 마음속에 줄곧 악마가 살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지요. 그건 아마 사실일 거예요. 하지만 그 악마를 끌어낸 건 미즈타니 씨 본인이에요. 다른 누구도 아니라고요! - 223p.

저자는 본인의 실명을 밝히지 않고 '야도노 카호루'라는 필명으로 글을 쓴 복면작가다. 기성작가일 수도 있고, 갓 데뷔한 작가 또는 무명작가일 수도 있다. 국내에 소개된 저자의 다른 책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작품을 써온 작가다. 다른 복면작가의 글을 몇 편 읽을 적이 있다. 대체로 수준이 높고 재미있다. 이 책도 그렇다. 글은 구성이 좋고, 집중도 잘된다. 독자를 점점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그런 흡입력이 있다. 다음 장이 궁금해져서 읽는 속도도 빨라진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작품에선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반전이 매력이다. ‘쿵’하는 느낌이다. (절대로 마지막을 먼저 읽지 마시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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