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접속'을 처음 보던 날 ] 2017. 09. 16.
1997년 9월 13일. 영화 '접속'이 개봉된 날이다. 내가 영화 개봉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접속' 개봉 20주년 기념으로 배우 전도연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알았다. 대신 내가 영화 본 날을 기억한다. 10월 3일 개천절. 그 당시 나는 대전의 모 연구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서 저녁에도 연휴에도 늘 연구소에서 살았다. 그러자 윗분이 지나가는 말로, 쉬는 날엔 산에도 가고 극장에도 가보라고 한 마디 하셨다.
개천절 오전에 간단히 기숙사를 정리하고 대전 시내에 나갔다. 10월의 선선한 날씨에 평소에 입지 않는 옷을 차려 입었다. 지금처럼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아니라 극장마다 하나의 프로를 상영하는 것이어서 미리 극장을 확인하고 찾아가는 길을 알아두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늦은 점심으로 칼국수를 사먹었다. 다음 날 연구소에 가니 몇몇 사람이 나를 보고 속닥거렸다. ‘어제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더라고’, ‘어제 혼자 칼국수를 먹더라고’ 졸지에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접속'을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영화 음악 때문이었다. TV광고로 먼저 듣게 된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가 귀에 쏙 들어왔고, 영화 개봉 즈음에 OST를 사서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OST를 들었다.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IMF 사태가 터졌다. OST 듣기가 중단되었다. CD는 여전히 내 눈에 보이는 곳에 꽂혀있다.
시간이 흘러 영화는 고전, 명작이 되었고, 출연배우들은 영화계를 이끄는 명배우, 유명배우가 되었다. 팬도 배우들도 나이가 들었다. 영화 개봉 10주년 행사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개봉 30주년에도 기념이벤트가 있을 것이다. 10년 후에도 나는 영화를 떠올리며 30년 전 영화 보던 날을 기억할 것이다.
- [500자 풍경사진 196]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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